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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두 Jan 23. 2023

송이의 어둠

2년 전 1월, 동물병원에 갔더니 송이의 오른쪽 시력이 거의 없다고 했다. 시력이 나빠지니 미용이 힘들어졌다. 얼굴에 가위가 가까이 가면 으르렁거리며 손을 물려고 해서 별 수 없이 얼굴 털을 면도기로 바짝 밀어야 했다. 털이 없는 송이 얼굴은 내 주먹보다 작고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여전히 예뻤다.

      

산책을 나가면 송이가 움찔거리며 놀라는 일이 늘었다. 불쑥 다가오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송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다니던 동물병원 의사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피부가 좋지 않아서, 귀에서 진물이 나서 병원에 데려가면 뭘 먹인 거냐고 나를 탓하면서도 이제는 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면서 스케일링을 다시 해야 한다고 했다. 1년 반 전에 스케일링을 하면서 심장 검사를 하느라 송이 다리에서 피를 뽑았을 때, 송이가 많이 아파했다. 어지간히 아파서는 낑 소리도 내지 않는 송이가 아프다며 우는 소리를 냈다. 의사는 나이가 들어서 피부가 두꺼워져서 아픈 거라고 했다.

이빨이 흔들려서 네 개나 뺐다며 추가 요금을 요구했다. 송이가 마취에서 깨어나는 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해리성 마취라 원래 그렇다고 들었어도 걱정스럽고 두려웠다. 세 시간이 넘게 지나서야 송이가 겨우 고개를 들었는데 집에 안고 오는 동안 송이는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사료는 이따 네 시간 뒤에…, 아니다. 오늘은 그냥 먹이지 마세요.”     

라고 의사가 말했다.

나는 걱정이 돼서 송이를 지켜보다가 4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송이가 일어나 걸어 다니는 걸 보고서야 허기를 해결하려고 라면을 하나 끓였다. 송이는 배가 고팠는지 있는 힘껏 몸을 일으켜 앞발로 밥상 위의 냄비를 쳤다. 오른발로 한 번, 왼발로 한 번.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어차피 의사가 처음에는 4시간을 말했으므로 송이에게 사료를 챙겨주고 밤새 자다 깨다 하며 송이를 지켜봤었다. 그런데 그걸 또 하라니.     


병원을 옮겼다. 먼저 다니던 동물병원과 같은 명문대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먼저 다니던 병원보다 규모는 많이 작았지만 훨씬 친절했다.

강아지의 귓병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며 오히려 이만하면 관리를 아주 잘한 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송이의 심장이 천천히 뛰고 있으므로 산책도 자제해야 하고 마취는 절대 위험하다고 했다.  

    

다행히 귓병은 좋아졌지만 송이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시력이 없어지자 송이가 집안 곳곳을 화장실로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엔 천천히 화장실을 찾아가서 볼일을 봤지만, 화장실에 가는 도중 참지 못하고 실례를 했다. 그러다가 날이 갈수록 아무 곳에나 볼일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음식을 덜어준 접시 위에 오줌을 눴을 때는 참 기가 막혔다.

     

한 번은 밤중에 수상한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다. ‘블라블라’하는 것도 같고 ‘음냐음냐’하는 것 같기도 한 소리가 욕실에서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켰더니 송이가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 달려가 보니 송이가 대야에 머리를 박고 게걸스럽게 물을 핥고 있었다. “송이야!”하고 불러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통에 물이 떨어졌나 생각했지만 송이를 안고 나오며 보니 안방 앞 송이 물통에는 깨끗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송이는 입가에 묻은 물을 이불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지난 4월, 주번이라 일주일간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야 했다. 4시반에 알람을 맞췄으나 '10분만 더'하며 뒹굴거리다가 4시 50분에 겨우 일어났다. 며칠 품속에 들어와 자던 송이가 만져지지 않았지만 휴가나온 아들방에서 자나 보다 생각했다.     

온통 어둠뿐이라 휴대폰 손전등을 켠 채 욕실로 갔다. 욕실 불을 켜고는 경악했다. 흠뻑 젖은 송이가 세제통이며 샴푸통을 온통 넘어뜨린 채 욕실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었다.      


"송이야, 여기서 뭐하고 있……“ 하다 말고 커다란 수건을 챙겼다. 얼른 따뜻하게 해줘야 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물이 아니라 똥물에 젖은 거였다. 욕실 바닥에도 여기저기 똥이 묻어 있고 플라스틱 빨래판 위도 노란 물이 잔뜩 묻어 있다.

송이는 똥을 누러 욕실에 들어왔을 거다. 볼일을 다 마치고 다리에 마비가 왔는지도 모르겠다. 축축한 욕실을 벗어나려고 넓지도 않은 공간을 구석구석 헤맸겠지. 자기 전에 걸레를 빨아 락스물에 담가뒀는데 그 대야에도 풍덩 빠진 것 같았다.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내가 잠에서 완전히 깨기 전 송이 발소리를 들은 건 몇 시였을까? 부쩍 씻는 걸 온몸으로 거부하는 송이가 따뜻한 물과 내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커다란 수건으로 감싸서 물기를 닦아내고 드라이어로 몸을 말리는데도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이불로 감싸주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송이는 그때까지도 잠들지 못하더니 내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서야 잠에 빠졌다.

      

뼈가 울퉁불퉁 튀어나온 송이의 등은 둥그랗게 굽었고 오톨토돌 사마귀가 만져진다. 배에는 검버섯이 가득하다. 어떤 때는 가랑이 사이로 비실비실 말아넣은 꼬리 아래에 똥딱지가 붙어 있다.  

    

나이 먹는 일이 이다지도 초라한 일이어야 할까 싶어 먹먹해진다.

     

젖은 걸레처럼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거나 한 방향으로 뱅글뱅글 돌다가 넘어지는 송이지만 사료와 물은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다. 자다 깨면 엉거주춤 일어나 오줌을 누고 비척이며 사료그릇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물론 한 번에 바로 찾아가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사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이 집은 송이가 익숙한 곳이라 떠나지 못한다. 송이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주고 싶지만, 송이가 없는 걸 상상할 수가 없다.

     

이기심인 걸 알면서도 아직은 떠나면 안된다고, 그러니 제발 아프지 말라고 누구에게인지 모를 기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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