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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러스씨 Mar 06. 2021

[7] MBTI라는 물신숭배

⏤ 타인에 대한 손쉽고 매끄럽고 코믹한 오해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전문적인 상담 기관을 통해서 여러가지 심리 검사를 진행한 적 있다. 그때 받았던 검사 중에서 MBTI가 있었다. 당시에도 알려져 있긴 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사람들의 인기를 끌며 밈(meme)으로 소비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MBTI는 그림 테스트, 문장 완성 테스트를 포함한 네다섯가지의 검사 중 한 가지에 불과했다. 그조차도 전문적으로 양성된 상담가와 나눈 체계적인 상담 내용 안에서 종합적으로(무척 조심스럽게) 언급되고 활용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느끼기도 MBTI심리검사의 결과지나 질문지의 구성 자체가 무척 직관적인 형태를 띠고 있어서 뇌리에 남긴 했다. 그런데 지금 무차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16personality의 MBTI검사는 전문적인 검사도 아닐뿐더러 MBTI에 대한 오해만 증폭시키는 것 같다. 결과지의 말하는 방식이나 구체적인 질문지의 내용도 전문 기관에서 경험한 그것과 많이 다르다. 그런데도 16personality라는 사이트에서 나온 불분명한 결과를 서로 비교하고 확산하며, 이런 유형은 이렇니 저런 유형은 저렇니 이사람은 이러니저러니 하며 '이해'를 들먹이는 말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황당하다. 더욱 황당한 건, 그렇게 불분명한 기관에서 검사한 불분명한 결과를 가지고, MBTI의 공신력을 논하고 칼 융이라는 공룡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신의 MBTI유형을 변호하며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황당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뭔가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지금 인터넷에서 떠도는 정체불명의 밈에 픽픽 웃어넘기거나 '꼭 내 얘기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중에 과연 몇 퍼센트가 전문 기관을 통해서 제대로 MBTI검사를 했을까. 아마 거의 없을 거라고 본다. 그저 인터넷에서 몇 번의 클릭으로 얻어낸 자신에 대한 설명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그것이 여지 없이 사실이라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큰 참조점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아연한 감정이 올라온다. 페이크 뉴스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여지없이 페이크 뉴스를 믿고 전파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통감한다.


   MBTI 심리 검사 자체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MBTI에 관한 무수한 썰을 전파하고 생산하고 소비하는 행태는 굉장히 문제가 많다. (이조차 MBTI 자체의 문제점은 아닐까?) 그래서 요즘 MBTI 유형을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 MBTI에 달라붙어서 그것을 저 편한대로 소비할 뿐이면서도, 거기 빠진 자신을 합리화하는 데 다시 MBTI가 동원된다. (이젠 하다하다 MBTI를 반박하는 MBTI유형을 고찰하는 종류의 글도 봤다.) 일종의 물신 숭배라고 생각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자신은 무엇이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MBTI를 이상하게 소비하고 광신하는 세태로 이어지는 것 같다. 통합할 수 없는 것을 통합하려고 하고,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또 어느 정도는 무지의 영역으로 풀어두어야 할 타인의 내면이라는 영역을 특정한 체계 속에 욱여 넣고 저 좋은 대로 해석하는 이상한 상상력이 작동하는 것 같다. 물신 숭배가 별 건가? 그게 무엇이든(돈, 명예, 인기, MBTI, 학문), 자기를 이해할 수 있는 전체의 한 부분으로 그려놓고 그 안에서 안심하는 것이다. 매끄럽고 간단하며 재밌기까지 한, 거짓된 '전체'에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꾸려가야 할 책임을 손쉽게 주어진 외부의 체계에 넘겨주는 방임이 일어난다. 그것이 자신을 설명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자신을 '개성있는 인간'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난센스가 벌어진다(이런 사람들은 결과지에서 "이 유형은 전체 인구의 1%밖에 안 됩니다" 하는 구절에 으쓱하는데, 세계 70억 인구의 1퍼센트는 7,000만 명이고 이는 영국 전체 인구와 맞먹는 엄청난 숫자라고 설명하면 아마 산통이 좀 깨질 것이다). 이런 방임의 밑바닥에는, 간단히 알아낸 것으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우리의 게으름과 오만함이 공존한다. 조금이라도 유명하고 잘났거나 예쁜 사람의 MBTI유형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그 사람이 1/16의 확률로 자신과 같은 유형이기를 은근히 소망하며 소속감을 바라지만, 정작 매일 인터넷 뉴스에 나오는 흉악범이나 오늘 1호선 던전에서 본 진상들의 MBTI가 자신과 비슷할 확률이 1/16이나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70억 인구를 16가지 유형으로 소급해서 손쉽게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의심되지 않나. 사람에 대한 이해는 아무리 복잡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혹시 잊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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