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애호가에게 와인투어만큼 구미를 당기는게 또 없다. 산지의 태양과 바람 냄새를 오감으로 느끼고 아름다운 포도밭을 산책하고 와인이 점잖이 잠든 까브에, 산지의 식재와 여러 와인을 비교맛보고, 여유로운 숙식, 다음날 눈을 뜨면 포도밭을 조망하며 조식을 하는 등 비일상을 만끽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나파등에서 힘을 쏟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 선구자로 新潟にいがたNiigata의 까브돗치가 있다. 이곳의 양조가 시작된건 1993년. 1995년에는 레스토랑,다음해에는 와인과 생활잡화를 파는 숍을 지었다. 그 후 프렌치나 수제소세지를 만드는 레스토랑, 베이커리등의 점포를 늘렸다. 10수년전에 온천숙박시설이었던 비네스파가 지어지고 서는 온종일 이곳에서 지낼수있는 체류형이 되었다. 2개의 자가원천을 가지고 호텔을 병설한 비네스파는 최근 봄부터 책과 카페를 즐길수있는 4000권의 책이 있는 북라운지로 신설되었다. 디자인 감수는 건출설계 suppose design office 요시다아이 씨. 책의 선별을 도와준건 와세다대학국제 문학관 무라카미하루키라이브러리, 오사카 아이들의책의숲나카노시마 등의 북디렉터 하바요시타카 씨. 와인을 마시면서 책의 세계에 흠뻑 빠질수 있다. 까브도치의 와인투어리즘 집대성이라 할수 있는 오베르쥬 트라비뉴 . 각각 다르게 디자인된 방에서 포도밭을 조망, 까브안에서 아페리티프를 즐기고 레스토랑에 가는등 와이너리 스테이를 보다 전면에 내새우고 있다.코로나전에는 연간 3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큰 와이너리 리조트였다. 전체 종업원 수는 약 200명을 넘는다. 그중 와인만들기에 종사하는 재배양조, 영업을 합쳐서는 고작 13인이다. 현재 와인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카케가와 후미토상. 엄마이자 까브도치의 창설자 지금도 대표를 역임하고있는 카케가와치에코상과 함께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제가 양조책임자로 되고부터 약 15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진정한 의미로 이 니가타의 풍토에 맞서 우리들만의 와인을 만들게 된 것은 겨우 최근 5년정도, 그전까지는 괴로운때도 있었지만 겨우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도 드네요’ 후미토상은 카나가와현의 요코하마시내에 태어나 가마쿠라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일을 하시다 전업주부로 지낸후 후미토상이 초등학생때 마케팅리서치 회사를 세웠다. 고학력이며 결혼 출산으로 퇴직한 주부들을 활약하게하는 여성만의 화사로 가정에서도 일이 가능한 리모트워크를 빠르게 도입한 선구적인 방식이었다. 치에코상에 재배양조가 오치키이치로 상과 만나 까브도치를 만들게 되었다. 오치키상은 1976년에 서독일 와인학교를 졸업한후 경력을 쌓았다. 당시 일본인이 유럽에서 와인만들기를 배우는 일은 매우 빠른 이색적인 존재였다. 귀국후 친척이 경영하는 홋카이도와인에서 일하고 1988년 나가노 상크제르를 세우는것에 개입하게된다. 그리고 자신의 오이너리를 설립하려고 모색하던중 와인애호가였던 치에코상과 만난것, 각자 담당분야를 살려 와이너리사업을 시작했다. 니이가타현 카쿠다하마의 토지를 발견, 포도를 심은것이 1992년.
3형제의 막내인 후미토상은 6학년이었다. 2째 형인 사토시상은 도내 프렌치레스토랑 오데코, 아타 의 셰프로 까브돗치의 시설내의 레스토랑 컨설팅도 맡고 있다. 도쿄 히비야 미드타운의 바-만은 사토시상과 후미토상의 콜라보의 결실로 어패류의 지중해요리와 까브돗치의 모든 와인을 취급하는 곳.후미토상은 어렸을 때부터 정원이나 베란다에서 야채 재배를 하는 편이었고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까브도치 초기자본에 300만엔이었는데 자금마련을 위해 클라우드펀딩을 취했다. 포도나무의 오너제도로 1개 1만엔으로 회원이 되어 매년 1병의 와인을 10년간 (현재는 5년) 조달 하는 방식이다. 이름표가 붙은 포도나무의 성장도 볼수가 있다. 3년간 1만명의 회원이 모여 1억엔의 자금을 얻을수 있었고 동시에 고객확보의 의미도 컸던 것이었다. 고교1년생에 미국에 1개월 지내게 된 일을 계기로 외향적인 성격이 되고 고교졸업후 대학진학대신 4년간 프랑스에서 지낼것을 결심. 그것은 즉 와이너리를 이어받겠다는 뜻이었다. 능동적인 결심이었다기보다는 가업에 가까운 경영스타일이어서 형들이 이어받지않은 것도 있어 하게되었다는 느낌이었다. 오치키상 아들도 이미 와이너리에 일하고 있었다. 엄마로부터 와인만들기는 농업이라고 얘기들어서 식물키우는 자신에게 맞는 거겠다생각했다. 파리에서 어학을 배우고 부르고뉴에 , 디죵대학에 재적해 그후 본 와인전문학교 CFPPA에 입학했다. 그래도 공부는 열심히 안하고 놀기만 했다고, 아파트 아랫층 프랑스인들과 , 같은시기 노라쿠라의 사사키켄상이나 다이아몬드주조의 아메미야요시오 상 그랑포레르의 쿠노야스코상과 재학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실하게 공부했기에 그때 자신을 알고있는 사람들은 지금 와인만들기를 하고있다고 들으면 놀랄거라고 생각한다고. 그래도 부르고뉴와인의 슬하에 있는 디죵이나 본은 각국의 소믈리에등 와인관계자가 많이 모인다. 그들의 은혜로 유명 도멘의 부르고뉴와인등을 마실 기회에는 빠지지않았다.
2003년 4월 귀국한 그는 까브돗치에서 처음 1년간은 영업담당. 일반소비자나 주류판매점의 사람과 이야기해 와인을 사게하고 마시게하는게 쉽지않은것을 잘 알게 되었다. 외부에서 보는 까브돗치의 존재도 잘 이해하게 되었다. 다음해에 포도재배에 일하게된다. 그때 밭은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작업순서를 바꾸자고 오치키상에게 상담. 일하는 분들은 자신이 어렸을때 부터 아는 분들이라 프랑스에 다녀와서 혁신하려하는 자신과 충돌도 컸다. 2006년 봄에 후미토상은 갑자기 양조책임자가 되라고 오치키상에게 통보받았다. 다른회사에선 보기 힘든 일이지만 까브돗치에서는 신입사원이라도 좋은 인재가 있으면 갑자기 전권을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돌아와서 3년째는 때라 딱 좋은 시기라고 생각. 그로부터 4년간 대혁신의 시대였다. 되돌아보면 죽을 정도로 공부했다고, 먼저 목표로 한것은 자사 포도의 비율을 높이는 것. 당시 와인생산량 12만병 90프로이상이 구입한 홋카이도포도로 홋카이도포도로 하는게 먼저고 자사포도를 쓰는게 두번째인 느낌이었다. 당시 포도수확타이밍은 지금보다 1개월 빨랐다. 모래재질토양이어서 굉장히 토지가 매말라있었다. 잘 익은 포도같은건 얻을수없다. 무리라고 모두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개념을 바꾸고 싶었기에 재배방법을 다시 모색해야 했다. 처음부터 포도조달을 밭기쉽게 카쿠다하마 해안가 와인양조의 역사가없는 모래토양에 까브돗치를 설립한게 문제였을지도. 후미토상의 개혁은 계속되었고 2008년부터는 대학원에 들어가 경영비지니스를공부하고, 브랜딩, 자금조달의 방법도 공부했다. 밭일까지 합해 5시까지 일하고 6시반부터 10시반까지는 수업. 집에돌아와서 새벽까지 숙제를 하는 생활을 했다.
주의에서 몇몇 전환점이 되는 일이 있었다. 지인의 음식점에 가서 와인을 팔고싶은데 어떻게하면 좋을까요- 하자 점주는 네가 좋은와인을 제대로 만드는것은 알고있다. 그런데, 케카가와군이 정말로 만들고싶은 와인은 무엇인가-? 후미토상은 뺨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좋은와인 맛있는와인도 세상에 넘쳐난다. 개성이없는 와인은 안된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다. 도쿄 영업소에서의 분한 경험도 있었다. 도쿄에서 와인을 파는게 아니라 도쿄에서 와인을 사러오신다. 라는 컨셉 이라고 말하자 이자카야의 사람들로부터 니이가타에 오시게 만드는 와이너리면서 왜 도쿄에 왔나? 너희들의 와인만은 이제 아니까 뭐 됬지- 라는 대답. 거기에 또하나의 고민은 후미토상의 와인을 부인이 마시지않는 것이었다. 맛있지 않아- 라며 마시지않는다고. 솔직히 꽤 노력해서 힘들게 와인을 만들고 있는데 나의 소중한 사람이 맛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게 꽤 쇼크였다. 그래서 물어보니 아황산이 적은 와인이 좋다고 하더라. 그 모든게 집약적으로 2014년부터 판매된 게 동물시리즈였다. 그 소개문은 이렇다. '양조가 카케가와의 취미로 만들어진 와인. 통상 까브돗치의와인과는 맛이 조금 다릅니다. 상냥하게 몸에 스며드는 와인을 목표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동물의 이름이 와인명으로 라벨에 동물일러스트가 그려져있다. 일단 라벨이 귀엽고 친밀감이 넘친다. 분위기나 맛 가격의 콘셉이 일관성있게 맞아떨여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인의 기호대로 모두 아황산 무첨가의 와인이다. 동물시리즈와 동시에 극단적으로 매마른 모래토양에서 가능한 포도를 어떻게든 와인에 승화시키고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모래토양의 가혹함은 까브돗치의 밭에서 볼때 잘 알 수 있다. 포도의 묘목이 5년이 경과해도 놀랄정도로 가느다란 나무 그대로.. 다른 지방의 포도밭에서라면 수령 2~3년 정도일까하는. 수분이나 영양이 극단적으로 적어서 성장이 늦고 말라버리는 일도 있다. 포도밭은 바다에서 약 1.3키로정도의 장소에 있다. 낮에는 해풍이 불고, 밤에는 육지바람이 든다. 해풍은 와인에 염기롤 가미해주는 대신 바다가 방대한 온도의 저장고가 되어 밤의 온도가 내려가지않는 큰 문제가 있다. 밤의 온도가 높으면 포도는 활동을 멈추지 않고 호흡을 이어가 많은 에너지와 당분을 소비하니까, 포도의 맛이나 질에 영향이 나타나고 만다. ‘자주, 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로부터 라고 얘기들하죠. 물론 당도도 산도도 높은 포도재배에 맞는 토지에서라면 그말대로입니다. 그치만 예를들어 루아르에서 유명한 화이트품종 슈냉블랑을 키우는것도 이 모래토양에서는 당도도 산도도낮고 향도 맛의 요소도 볼륨도 적은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해야 할까요. 반면 그런 포도이기 떄문에 발효중에 와인에 껍질을 침용하는 마세라시옹을 길게해 오렌지와인같이 만들어도 강한 탄닌이나 텁텁함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이 포도자체로 사랑해주어 하나의 와인으로 완결시키는 것. 양조법을 바꾸는것으로 다른 매력을 탄생시키는것입니다. 저는 양조가라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그것에대한 프라이드도 있습니다. 그 결과, 완성된 것이 동물시리즈의 슈냉블랑(미츠바라) 여기서는 가로로 늘어나는 깨끗한 산이 아니라 차츰 옆으로 퍼져나가는 풍미를 지향하고 있다. 이 동물시리즈는 까브돗치 카케가와후미토의 하나의 대명사가 되어간다. 2년째에는 8000병. 가장 많았을 때는 10종류 1만8000병을 팔았다. 더욱에 펌피 시리즈도 냈다. 컬러풀한 알파벳 라벨도 원래의 까브돗치의 이미지를 뒤엎었다. 펌피시리즈는 식용포도의 가능성을 찾고싶었습니다- 마시면 즐겁고 행복해지는 의미를담아 이름붙였다. 와인을 별로 마신적 없는 사람도 즐기기를 바라면서. 스파클링 화이트는 델라웨어와 나이아가라, 로제는 스튜벤을 메인으로 하고 있다. 조금 탁한 현재 인기있는 스타일 이다.
후미토상은 다시 까브돗치의 왕도에 회귀하려 하고 있다. 세파쥬 시리즈에 힘을 쏟고 싶다고, 자사농원의 모래토양에서 얻은 포도를 사용해 품종과 재배지의 풍토를 직관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와인이다. 동물시리즈나 펌피를 브랜드화한것으로 과거의 까브돗치의 이미지라는 무거운 것을 훅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이제 그 시기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는 ‘다녀왔어, 세빠쥬시리즈. 드디어 너희들과 마주할수 있는 시간을 만들게 되었어’ 라는 기분으로 가득하다. 현재 세파쥬 시리즈의 대명사로 된건 알바리뇨, 2015년 잡지 브루터스 일본와인 특집에서 2014알바리뇨가 높이 평가된 것이 계기였다. 알바리뇨라 역시 바다 가까이 모래토양이 풍부한 복잡성이 있는 와인으로 생산되어 어패요리에 어울려 인기이다. 잡지의 평가는 정말 자신감을 갖게되었다. 스페인의 알바리뇨는 바디감있고 풍만하지만 모래토양에서 만들면 사르르 가벼운 풍미가 된다고. 무거운 두께감이 있는게 좋은 와인이며 가치가 있다고 스스로도 한구석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벼운 것은 결코 부정적인것이 아닌 일본의 모래토양에서만 나는 특징이나 개성이면서, 그것도 굉장한것이라고 처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의 유니크함이 나타낸다는게 보이는것 까지는 정말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를들어 그 이름도 프랑스어 모래인 sable 인 화이트는 알바리뇨, 리슬링,세미용, 비오니에의 4품종의 블렌드로 레드는 까쇼, 메를로, 쁘티베르도, 말벡등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도 레드용 포도는 까브돗치안에서도 가장 수령이 많다. 29년을 맞은 것도 있다. 포도는 수령이 높아지만 수확량이 적어져 그만큼 응축된 열매가 되니까 이후 더 기대를 갖고 있다. 세파쥬시리즈는 떼루아를 표현하기위해 먼저 양질의 포도를 재배하는 것에 전념 한다. 마치 작은 압자가 떨어지는 것처럼 모래토양에만의 졸졸 마시기 편한 와인을 만들고 싶다.
이 경지에 다르기까지는 까브돗치의 주변에 생긴 와이너리의 존재도 후미토상의 큰 자극이 되었다. 같은 경지내에서 현재 5개의 와이너리가 있다. 니이가타 와인코스트로 서로 의견을 교환해 더불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 와인산지를 형성하는 것에는 동지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모이는 사람은 애초에 등가교환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것은 전부 알린다. 그대신 저의 모르는 것을 주세요- 하며, 페르미에의 혼다타카시 상은 미즈호 증권을 퇴직하고 까브돗치 주재의 와이너리 경영학원에서 배운뒤 2006년 페르미에를 창업했다. 역시 알바리뇨가 높이 평가되었다. 후미토상과 혼다상은 양조가로서는 동기 로 절차탁마해 정보교환을 하고있다. 2011년에 와이너리를 세운 도멘 쇼의 코바야시 히데오 상의 존재는 큰 의미가 있다. 외국에서 자라 대학에서는 농학의 생물자원학을 수업해 미생물학읜 생명공존과학에서 박사를 취득한 경력을 갖고 있다. 박사이기에 코바야시상 부터의 이론적인 사고나 중요한 가르침을 받았다. 밭에대해 많이 상담했다. 그가 오기전까지는 여러가지 핑계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는 모래토양이니까- 라던지 까브돗치는 이런 와인을 만들지않으면 안되 라던가 자신은 내츄럴와인이 좋아 라던가. 그치만 코바야시상은 ‘저 자신을 위해 만든와인입니다’라고 표명해 자신이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내놓는다는 철저한 자세로 일관한다. 이런 강한 의지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액체 그것이 가진 에너지나 치밀함은 역시 압도되었고 동시에 분한기분이 들었다. ‘대단하다 왜 이런게 가능한거지’ 하고 . 재배양조가로서는 제가 세계에서 가장 존경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그 이외에는 칸티나 지오세트 의 세토키요시상에게는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 많이 배웠고 2015년에는 아베 타카시상이 르상크 와이너리도 설립했다. 이제부터는 조금씩 와인부터 거리를 두고 전체의 경영에 비중을 옮겨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단지 양조가로 계속하고 싶고, 이렇게 재밌고 즐거운 일은 없으니까. 이 토지에 와서 와인을 마시는 분들에게 어디에도 없는 여기만의 기억을 드릴 수 있는 액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는 후미토상 혹시 이 니이가타 카쿠다하마가 포도재배의 적지 였다고하면 이정도의 고뇌는 없었다. 모두 모래토양이었기 떄문에 고민하고 생각해서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