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희 Nov 01. 2020

사라진 것

사라진 것들, 사라진 장면들



 어느 웹툰 작가의 별명은 ‘파괴 왕’이다. 작가가 다녀간 곳마다 사라지기 일쑤라 그의 팬들이 파괴 왕이라는 제법 어울리는 별명을 지어줬다. 작가가 다니던 대학교 학과가 사라졌고 전역한 군대가 사라졌다. 게다가 그가 연재했던 포털사이트들이 문을 닫기도 했다. 나는 이 별명이 지어지게 된 여러 계기를 훑으며 파괴 왕이라는 별명은 내게도 어울린다 생각했다. 내가 애정을 쏟은 것은 모두 없어졌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사라질 것들만 좋아했기 때문일까? 내가 사랑했던 것은 모두 낡고 다른 사람들이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가 그랬고, 집에 가는 길에 한참 쳐다봤던 이름 모를 큰 나무가 그랬고, 뒷산 낡은 놀이터가 그랬다.




  - 사라진 것 1: 미동사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는 문방구가 2개 있었다. 하나는 교문 바로 앞 ‘미동사’였고 다른 하나는 교문에서 나와 오른쪽을 보면 바로 보이던 ‘아카데미’였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대부분 미동사를 좋아했다. 아카데미 주인 할아버지는 꽤 불친절하고 무서웠다(아직도 가끔 이 앞을 지나갈 때가 있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나와계시면 긴장한다). 반면에 미동사는 주인아주머니와 주인아저씨 두 분 다 친절하셔서 어렸던 나는 대부분 준비물과 간식, 여러 장난감을 미동사에서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은 것은 아카데미 문방구다. 미동사는 초등학교 앞에 자리한 대학교에서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밀어버렸다.

 미동사는 항상 문이 열려있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 문이 닫혀있던 적은 없다. 항상 열린 문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주인 두 분이 있었다. 두 분은 아이들에게 다정했다.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 정신이 없어도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는 법이 없었다. 가끔 물건을 사다가 돈이 모자라면 외상을 달아주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뭘 믿고 그 조그만 애들에게 외상을 받았나 싶다. 하지만 두 분이 그렇게 아이들을 믿고 다정하게 받아 주셔서 나는 그곳이 좋았다. 꼭 학교에 있는 엄마, 아빠 같았다.

 대학에서 미동사를 밀고 건물을 세운다고 했을 때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의 반발도 심했다. 물론 문방구 때문이 아니라, 그 자리에 높은 건물이 올라가면 운동장을 가려서 아이들의 일조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이었다. 한창 부모님들이 소송을 걸어가며 싸울 때 나는 일조권은 둘째치고 미동사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아이들이 햇빛은 못 받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인사해주고 사계절 내내 열려있던 오래된 장소가, 그 두 분이 ‘새 건물’ 때문에 사라진다는 게 나에게는 더 슬픈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슬픈 일은 일어났고 지금은 그 자리에 당시에 새로 올린 매끈한 건물과 보도블록만 차갑게 자리하고 있다. 미동사의 다정함은 십여 년 전 내 기억 속에만 남았다.




  - 사라진 것 2: 주차장 나무

 어린 날 기억 중에 내가 가장 꿈처럼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보던 나무의 움직임이다. 나무를 본 날은 아마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시작하는 사이였을 것이다. 나는 조금만 더워도 땀을 뻘뻘 흘렸기 때문에 그날도 더운 날씨에 이마와 목, 등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초등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 하나를 올라야 했다. 나는 언제나 그 계단을 올라가는 걸 싫어했다. 원래 땀을 많이 흘리는데 계단 끝까지 올라가면 운동이라도 한 사람처럼 땀에 절여졌기 때문에. 어쨌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했고 나는 벌건 얼굴로 헉헉거리며 끝까지 올랐다. 그리고 잠깐 쉬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거기에 그 나무가 있었다.

 쨍하다는 말이 어울리던 맑고 눈부신 하늘, 더운 날씨와 다르게 땀을 순식간에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과 계단 아래에 있었지만, 계단 끝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맞을 만큼 거대했던 짙푸른 나무 그리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던 내 단발머리와 빽빽한 나뭇가지들. 바람이 내 뺨과 머리칼에 닿을 때, 그 큰 나무의 나뭇가지와 잎이 스스스스, 스스스스 소리를 내며 부딪힐 때 나는 다른 세상에 닿은 기분이었다. 바람이 길을 내서 나를 꿈속에 데려다 놓은 것만 같았다. 주변에 사람이나 지나가는 자동차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이 그 나무와 나만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저기에 있었을까.’ 그 나무는 계단 아래 주차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항상 지나는 하굣길이었는데 나는 그 나무를 그때 처음 봤다.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집으로 향하기 바빴으니 그 나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꿈같은 장면과 부딪힌 날 이후로 나는 매번 학교를 마치고 계단에 올라 그 나무를 보며 바람을 맞았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나무와 나밖에 없는 묘한 기분의 세상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이 역시 이제는 만날 수 없다. 나무는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한동안 나무를 매일 찾던 관심은 그 풍경이 익숙함이 되자 사그라들었다. 나무도 그것을 알았을까? 얼마 지나서 다시 그 장면이 떠올라 하굣길에 그 나무를 찾으려 주차장을 봤더니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는 자신을 잊은 내게 인사도 없이 떠났다. 그리고 그 나무가 있던 곳에는 언제 나무가 거기 있었냐는 듯 사람들이 농구나 배드민턴을 치는 작은 운동장이 생겼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몸에 소름이 돋고 막연한 그리움을 느낀다. 나는 이후로 그때처럼 꿈꾸는 듯한 강렬한 장면을 만나지 못했다. 감히 짐작하자면 열 살쯤 만난 그 장면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꿈이 되지 않을까.




  - 사라진 것 3: 뒷산 놀이터

 아파트에 살았던 아이들은 모두 아파트에 만들어진 놀이터에서 논 기억이 있을 것이다. 초록, 빨강 우레탄 바닥에 귀여운 모양의 놀이기구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에 살았고 내가 놀이터에서 놀려면 우리 집 위에 지어진 아파트 놀이터에 들어가 놀아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파트 놀이터가 불편했다. 아파트 놀이터는 온전히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놀이터 아이들이 내게 어느 동에 사냐고 묻고 ‘너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혼자 긴장하며 그곳에서 놀았다.

 어쨌든 그렇게 불편한 곳에서 노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고 나는 한두 번 가다가 아파트 놀이터에 가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뒷산에 있던 무너지기 직전의 놀이터였다. 사랑했는데 사라진 것들을 말한다면서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수식어를 쓰자니 웃기지만, 그 놀이터는 정말 툭 치면 무너질 것 같은 놀이기구 밖에는 없었다. 그 놀이터는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었는데 요즘에는 없는 씨름판과 폐타이어 4개가 대롱대롱 달린 이름 모를 놀이기구도 녹슨 시소와 그네가 전부였다. 주변에 풀은 관리가 안 돼서 제멋대로 자라기도 했다. 아마 버려진 놀이터쯤 되었을 것이다. 다른 애들이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곳이 마음에 쏙 들었다.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아무도 찾지 않는 놀이터였으니.

 나는 그곳에서 그네 타는 것을 즐겼다. 그나마 그네가 제일 멀쩡하기도 했고 그네에 앉아서 하늘을 보면 꼭 하늘에 닿을 것 같아서 몇 분이고 그네에 혼자 앉아서 발을 굴렀다. 그 놀이터에는 동생과 함께 갔는데 내가 그네에 앉아 있을 때면 동생은 내 안중에도 없었다. 발을 있는 힘껏 구르며 공중으로 뜨면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종일 그네를 타면서 하늘이 움직이는 걸 눈에 담고 싶었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이어져 나는 여전히 그네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것을 보면 ‘나도 저 사이에서 그네 타고 싶다’라는 충동이 인다.

 뒷산 놀이터는 산책로를 만들면서 사라졌다. 나는 아직 못 가봤는데 그곳에 다녀온 엄마 말로는 놀이터 대신 체육 기구가 들어섰다고 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놀이터에 관심을 못 줬는데 그곳도 문방구와 그 나무처럼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내가 사랑하는 것을 또 잃었다.




 내게서 사라진 것들을 쓰면서 사라진 것은 단순히 문방구, 나무, 놀이터가 아니라 그들이 내게 남겨줬던 장면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정한 두 분이 맞아주시던 약간 어둡고 좁던 문방구, 세상이 멈춘 듯 꿈같은 순간, 한참을 내 눈에 담기던 하늘은 이제 만날 수 없다. 그 장면에는 모두 다른 이들이 원했던 것이 들어찼다. 새로운 건물이 올라갔고 운동장이 생겼으며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필요하다고 요구했을 이들이 야속하기도 하다. 그들의 필요는 내게 필요했던 장면들 앗았다. 나는 그런 장면들을 품으며 살아가는데 아무래도 나처럼 그런 장면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요즘에 없어서 다수의 필요에 밀린다.

 요즘은 더 자주 내가 사랑했던 것을 잃는다. 사람들은 내가 마음을 줬던 장면을 지우고 새롭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는데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그 장면을 잊지 않으려 사라진 것들을 계속 곱씹는다. 머릿속에 짧게 새겨진 그 장면까지 잃어버릴까 무서워서.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첨벙, 풍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