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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Nov 08. 2020

첫 번째 메모

그래,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지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스마트폰 메모장을 자주 사용한다. 내게 강렬한 사건이나 어릴 적 일은 잘 기억하지만 평범했던 날 내가 느꼈던 것들은 휘발성이 강해서 적어두지 않으면 ‘아, 그때 내가 뭐라고 생각했지?’ 하면서 나중에 괴로워한다. 메모장에는 순간의 기분이라거나 어떤 걸 보거나 듣고 스친 생각, 다음에 글로 써봐야지 하는 것을 주로 적는다. 그리고 이 메모들은 다른 메모들과 달리 메모장 ‘생각’ 폴더에 따로 담긴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쓸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 폴더에 들어갔다가 문득 이 폴더에 저장된 가장 첫 번째 메모는 무엇인가 궁금해서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가장 첫 메모는 2년 전 9월 끝자락에 썼다.


 ‘카페에 앉아 있는데 괜히 내가 좋아할 법한, 좋아하는 노래가 연달아 나오면 씩 미소 짓게 된다.’


 좋아하던 카페에 갔던 날일까, 아마 이날은 꽤 행복했던 것 같다. 위에 올려진 다른 메모들을 훑으니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을 많이 담았고 좋았다거나 행복했다는 느낌의 메모들은 손에 꼽을 정도니, 이걸 메모까지 했다면 아주 기분이 좋았던 것이 분명하다.


'생각' 폴더의 가장 첫 번째 메모




 이 메모를 보고 2년 전 나는 이런 것에 행복을 느낄 줄 알았구나 싶다. 요즘은 마음이 힘들어진 건지 모든 일에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피곤하게 살고 있다. 두 살 어린 나는 지금의 나보다 행복을 쉽게 발견했다는 점에서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을지 모르겠다. 아, 지금도 나는 과거의 나와 스스로 비교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자신을 갉아먹는 피곤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자주 ‘너는 너고, 나는 나지.’라고 말하고 다니며 그렇게 진심으로 믿으려고 하지만 나는 어느새 다른 사람과 나를 쉴 새 없이 비교한다. 아마 슬프게도 내가 친구들에게 했던 모든 칭찬과 축하 속에는 비교를 통해 생겨난 ‘너랑 나는 비슷한데 나는 못 했고, 너는 그걸 해냈다.’라는 일종의 시기심과 ‘나는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인간이다’라는 자격지심이라는 티끌이 묻어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 친구들은 누구나 다 비교하고 자격지심은 어느 정도 있다고 말해주며 나를 달래주는 좋은 친구들이지만, 내 생각엔 남들도 그렇다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나 스스로 불필요한 비교를 하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어쨌든 비교를 통한 자기혐오는 결국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니. 그러니까 내가 나를 싫어할 때 가장 망가지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갉아먹는 건 2년 전 나처럼 내가 쉽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놓치고 있어서가 아닐까. 내 속이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게 아니라 텅 비어 있어서 그 속을 자기혐오 따위로 채우는 것이다. 자기혐오 대신 삶에서 느끼는 행복함이 차오르면 자연스럽게 비교는 멈추게 되리라 믿는다. 이미 나는 행복한 사람인데 비교할 게 무엇이 있겠나.




 내 속을 행복으로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먼저 떠오른 것은 인정하는 것이었다. 행복과 부정적인 감정은 딱 붙어 있는 종잇장 같은 존재라는 것. 이를테면 하루를 안 좋은 기분으로 시작했을지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집에 가며 지는 노을을 봤을 때 잠시나마 그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났다면 그 순간은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 조그마한 것에도 나는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큰 것도 아니고 너무 가까이 마주해서 잘 모를 뿐이지 사실은 그런 모든 순간이 행복의 장면이다.

 다음은 행복을 기록하는 것이다. 글, 사진, 그림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겠다. 자신이 가장 편한 방식으로 행복의 순간을 남겨야 한다. 뇌는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우울한 순간은 그렇게 잘 기억하면서 행복했던 날을 떠올리라고 하면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이 보기에도 행복한 순간 말고 내가 당장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사소한 순간일지라도 그 감정과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 내 속에 저장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닐까. 내가 행복한 순간에 ‘나 지금 행복해’하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이를 입 밖으로 내뱉으면 행복하다고 말한 내 목소리는 다시 귀를 통해 마음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행복하다고 느낀 마음이 한 번 더 내가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순환으로 나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다만,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억지로 행복을 찾지 않았으면 한다. 뭐든 자연스럽고 진짜인 것이 좋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니까. 정말 작고 사소하더라도 내가 좋다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잘 안 되는 부분들이다. 앞으로 연습해나가다 보면 스스로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이 되어 있겠지. 불필요한 비교를 하며 나를 갉아먹지 않을 것이다. ‘너는 행복하구나, 나도 행복해.’하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행복했던 일을 하나 기록해야지.


 ‘아침 독서를 했다. 완전히 밝지 않지만 따뜻한 분위기와 고요함을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커버 이미지 출처: Photo by Jacqueline Munguí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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