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하고, 적당하게
오랜만에 좋아하는 디저트가 생겼다. 밤 조림, 정확히는 보늬밤. 밤의 껍질을 벗길 때 속 껍질은 남기고 그것을 설탕과 럼(술의 종류)에 졸여 달큼하게 먹는 것이다. 이때 밤의 속껍질을 한자로는 ‘율피’, 우리말로는 ‘보늬’라고 부른단다. 그래서 이 밤 조림도 ‘보늬밤’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보늬밤은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 속 주인공이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이게 그 당시부터 이맘때쯤이면 유행한 건지, 요즘에 갑자기 유행인 건지 모르겠으나 여기저기서 보늬밤을 만들어 먹고 있기에 나도 그 맛이 궁금했다.
‘껍질도 다 안 깐 밤이 그렇게 맛있나?’
나는 평소에 밤을 즐겨 먹지 않는다. 가끔 밤 식빵에 붙은 밤을 떼먹는 정도가 전부랄까. 밤은 딱히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의 범주에 포함이 되지 않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보늬밤은 일단 이름이 마음에 들어 어떤 맛인가 궁금했다. 처음에는 ‘보늬’가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보늬’하고 읽으면 ‘늬’를 발음하느라 입이 꼭 웃는 모양이 된다. 괜스레 ‘보-늬-’하고 늘려 읽게 된다. 조금 더 오래 웃는 얼굴이 된다. 요즘 통 웃을 일이 없는데 이렇게라도 얼굴을 웃게 해주니 그게 좋았다.
일단 호기심이 생겼으니 맛보기라도 하고 싶은데 보늬밤을 파는 곳을 알 수 없어 만들어 먹어야 하나 하던 찰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보늬밤을 판다는 걸 알게 됐다. 이미 11월 초부터 판매 중이었는데 그때는 내가 보늬밤에 관심이 없어서 몰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보늬밤을 먹기 위해 외출했다. 내가 주저 없이 카페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절대 맛없는 것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믿음과 카페에서 나보다 먼저 밤 조림을 먹은 여러 사람의 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외출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밤 조림 하나를 입에 넣고서 다시 한번 확신했다.
입에 넣고 씹을 때 왈칵 흐르는 시럽과 부드러운 밤은 참 적당한 단맛이었다. 너무 달아서 얼굴이 찌푸려지지도 않았고 너무 싱겁지도 않은 딱 ‘보늬’를 발음할 때 지어지는 미소 같은 맛. 밤 한 조각을 입에 넣을 때마다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름을 부를 때도 먹을 때도 미소가 지어지는 밤 조림이라니 참 매력 있는 디저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의 내게는 더없이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다.
요즘 나는 대체로 어두운 사람으로 지냈다. 올해 중 11월이 가장 내게 힘든 시기가 아닐까 할 정도로 자주 힘들어했다. 남들은 ‘그냥 하는 것’이 나는 낭떠러지를 밟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 뜨면 감을 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번 달을 보냈다. 가끔 숨쉬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곳으로 도망치면서 이번 달을 보냈다. 이렇게 꽤 무력한 한 달을 지나오는데 나를 미소 짓게 만든 게 보늬밤이다. 이름으로, 그 맛으로 조금 웃어보라고 나를 달랜다. 그리고 나는 그 적당한 미소와 단맛에 마음이 풀려 웃고 만다. 밤 조림 한 알을 입에 넣고 씹는 동안에는 나도 좀 적당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내 삶을 살아가기에 부족함 없이 적당한 사람.
밤 조림 한 알을 입에 넣고 느껴지는 적당함에 불안하게 떨리던 마음을 조금 진정시킨다. ‘보늬-’하고 적당하게 미소 지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