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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운 너 Oct 04. 2022

Her, 그녀를 사랑한 그의 이야기

영화 <Her>


Cyber relationship, 이라는 소재가 흥미롭다. 어떤 카테고리에 이 영화를 SF 멜로라고 구분 지어놓은 걸 봤다. 그럼 이 작품은 장르의 개척이라고 칭해야 하나?


사만다 Samatha라는 이름의 가상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그는 외로운 도시인을 대변한다.

도시인은 현대인으로 바꿔 불러도 무리가 없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많은 가능성이 극대화된 인물이 ‘테오도르  Theodore’다. 

그의 직업도 참 재미있는 소재이다.

누군가를 대신해서 편지를 써주는 직업이라니. 외로운 사람들의 세상에서 덜 외로워지려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직인 셈이다. 

또 재미있는 건, 수시로 확인하고 통화하는 OS(Operating System)과의 관계가 사실은 피상적인 대상과 함께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형식적인 면에서는 우리가 친구나 연인과 소통하는 방법과 차이가 없으며 좀 더 나아가 장거리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익숙해지기 힘든 건

남자 주인공의 스타일이다. 그 바지에, 그 튀는 색깔 셔츠는 좀 아닌 것 같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조마조마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패션은 좀....

물론 당신의 스타일을 존중하지만! 


어쨌든

Her, 라는 영화 제목은 그녀 Her를 사랑한 그의 이야기이다.

상식의 잣대로는 인정할 수 없지만, 그가 사랑에 빠지면서 무기력한 삶에서 생기를 찾는 모습은 너무나 “인간적”이라서 반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말 인간들의 사랑인 에이미와 찰리가 결별하고 에이미가 헤어진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은 더 이상 구질구질할 수 없는 정도로 현실적이고 진저리쳐질 만큼 끔찍하다.

대다수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갈등이 사소할 수 없을 만큼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되고 신발을 먼저 벗고 소파에 앉는 것과 소파에 앉아 쉰 다음에 신발을 벗는 차이만큼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지만 결국은 서로를 견디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넌더리 나본 경험을 가졌거나 넌더리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정말이지 깊게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깔끔하게 목소리로만 모든 공감을 나누는 관계는 불평이나 불만 혹은 서로 다른 삶에서 지켜온 오래된 습관 때문에 싸우고 미워하고 기분 상하는 너저분한 일들은 생략된다. 물론 사만다가 몸이 없는 자신의 한계에 대해 토로하고, 태생적인 경계에 대해 말하지만, 처음부터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시작한 만남이기 때문에 사만다의 불행일 순 있지만, 테오도르의 불행은 아니다. 게다가 몸이 없어 늙을 걱정이 없다는 그녀의 대사는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OS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 허무맹랑하지만, 충분히 로맨틱하고 공감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 있었는데 그녀가 나에게만 속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했다는 사실, 8316명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테오도르를 통해 그가 사만다와 맺은 관계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일방적이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641명과 사랑에 빠졌다는 사만다의 고백은 이 모든 관계가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를 재확인하게 하고, 사이버 관계의 종료가 멀지 않았음을 예고한다. I am different from you! 


그런 면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은 좀 뜨악한 면이 있다. 

두 사람 모두 OS연인으로부터 멀어져 남겨진 후, 친구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사이가 되는 듯한 결론은 좀 쓸쓸하다. 아마도 감독은 “인간의 한계”를 강조하며 결국은 인간끼리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는 당연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이 얼마나 무기력한 마무리인지. 


사랑은 외로운 사람끼리 짝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적당한 사람을 만나 적당한 관계를 지속하며 적당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테오도르가 느꼈던 가슴 뛰는 사랑의 그 핑크빛 설렘은 가상의 것이라는 숨 막히는 절제가 오히려 영화의 독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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