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 Apr 01. 2024

산바람

백패킹을 하며

 초봄, 한밤 산등성이에 서 있노라면, 바람이 나를 친다. 이 바람이 된바람인지 하늬바람인지 혹은 높새바람인지,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자연에 아둔한 나는 모른다. 모르거니와 그 바람은 나에게로 온다. 산을 타고 넘어가는 산바람은 굳세고 청아하다. 청렴한 무인(武人)같은 산바람을 깊게 들이마시면 내 몸은 맑아지고 단단해진다. 속세에서 찌든 고(苦)를 정화시키고 몸속 가득 기(氣)와 신(新)을 불어넣는다. 나는 신생한다. 바람이 세게 지나가는 산골의 노송은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으로 휘어져있다. 이런 나무들은 목질이 성기지 않고 단단하여 숯으로 만들면 쇳소리가 난다고 어느 숯쟁이가 인터뷰하는 것을 방송에서 봤다. 나는 나무도 숯도 잘 모르지만 당연히 그러할 것이라고 이해했다. 괜스레 바람을 맞는 내 살을 만져보니 물렁물렁하다.

바람이 불어오는 산골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문득 거대하다. 산속은 어둠이 가득 차 육안으로 식별되지 않고 거시적으로 바라볼 뿐이다. 골짜기, 절벽, 계곡, 호(湖) 등은 내가 봐서 알 뿐이지 자연이 만든 행간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하되, 나는 이곳에서 홀로 겸허해진다.

친구와 함께 산행을 하면 친구 놈은 고등학교 때 배운 청산별곡 한 곡조를 부른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


듣기 좋아서 나도 절로 따라 부른다.

과거에 살았던 어느 선조는 자연을 찬미했고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그 선조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청산별곡을 불렀던 선조는 백골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갔고 나 역시 그러할 것이며 모든 인간이 그러할 것이다. 그 억겁의 세월 속에서 자연은 영원히 푸르르다.


 바람이 차다. 나는 몸을 떨었다. 


합천 황계폭포


작가의 이전글 콩콩(트렘폴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