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골딩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솝우화'를 생각하면 편하다. '다른 것을 말하기(Other speaking)'란 뜻의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에서 유래된 말로 추상적, 금기적, 종교적, 정치적 개념과 사상을 일차적 의미(표면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비유적, 암시적, 상징적, 풍자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문학이나 조형예술에서 많이 발견되는 기법인데 발상이나 방법의 기원은 굉장히 오래된 것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한 이솝우화를 비롯한 여러 우화와 '단테의 신곡(14세기 이탈리아)',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1678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1945년) 등이 우수한 대표적 알레고리 문학 작품이라고 평가된다.
<파리대왕(1954년)> 역시 대표적인 알레고리 작품이다. 소설 속 인물들과 행위들로 당시 정치적 상황과 인간의 본성, 윌리엄 골딩이 바라본 세계 2차 대전의 나치즘의 광기 등을 신랄하게 사실주의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핵전쟁이 일어난 가운데 비행기로 후송되던 만 5세~12세의 남자 어린이 무리가 무인도로 불시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문명도 어른도 지성도 규칙, 법도 없는 무인도에서 어린이들은 태초의 인간이다. 순진무구한 꼬마들은 물구나무서기도 하고 무인도를 탐험하며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낸다. 다소 밝은 분위기로 시작되지만 선거를 통하여 선출된 대장인 랠프와 잭의 의견 충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어린아이 중에 지성을 담당하고 안경(문명)을 쓰고 있는 피기는 이성적으로 무인도에 갇힌 상황을 이해하고 헤쳐나가려는 아이다. 하지만 뚱뚱하고 천식이 있어 무리 속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올바른 말을 해도 매번 괄시받고 그의 발언권은 묵살된다.
잭은 사냥꾼을 자처하고 그의 부대와 함께 멧돼지 사냥을 나선다. 사실 랠프와 잭은 멧돼지를 잡을 기회가 한 번 있었는데, 아직 살아있는 생물을 죽일 용기를 가지지 못하여 두려움에 실패하고 만다. 그 후 잭은 얼굴에 진흙과 숯 막대를 문질러 위장을 하고 물에 반사된 자신의 얼굴을 본다.
'거기 보이는 것은 이미 자기의 모습이 아니었고 무시무시한 남이었다. (생략) 마스크는 이제 하나의 독립한 물체였다. 그 배후로 수치감과 자의식에서 해방된 잭이 숨어버린 것이었다.'
마스크를 쓴 잭은 사냥에 성공하지만, 그의 담당 업무인 봉화를 꺼트리고 만다. 마침 무인도 근처로 배가 지나가지만 봉화가 꺼진 탓에 구출당할 기회를 놓친다. 피기가 사냥보다 봉화가 더 중요함을 잭에게 말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폭력이었다. 한껏 들뜬 잭의 무용담을 들으며 멧돼지 고기로 파티를 한 무리는 멧돼지를 사냥하고 도살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는 분노와 선망으로 휩싸였다. 봉화가 꺼져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섬 안에 짐승이 아이들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무리들은 겁에 질린다. 그러나 그것은 꼬마들의 울음소리와 무섬으로 인한 분위기로 만들어 낸 허상이다. 짐승의 존재 여부에 관한 집회가 길어지고 꼬마들의 집중력이 한계에 다다라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때 사이먼(예언자, 순교자)이 소라를 잡고 발언권을 얻는다.
'어쩌면 짐승이 있는 것인지도 몰라. 내 말은... 짐승은 아마 우리들 자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생략) 사이먼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질을 표현해보려고 애썼으나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곧 영감이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잡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
사이먼의 말에 잭은 야하고 추잡한 욕설을 하면서 이야기를 묵살시키고 꼬마들로 하여금 비웃음을 준다. 논리적이고 지성이 있는 피기 역시 바보라며 진지하지 않게 받아들인다. 사이먼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공포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고 추악함은 인간 자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곧 아이들이 보여줄 추악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을 암시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사실 짐승은 착륙을 잘 못 하여 나무에 걸려 죽은 낙하병이다. 어두운 밤에 짐승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러 간 잭과 랠프는 미풍에 달랑거리는 파리 떼가 뒤덮인 시체를 짐승으로 착각한다. 봉화 지점과 몇 피트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던 짐승 때문에 봉화를 어떻게 올려야 될지에 관한 집회를 하다 잭과 랠프의 의견 대립으로 잭은 사냥 패거리를 이끌고 섬 끝으로 독립한다. 그 후에 사이먼은 잭이 짐승에게 제물로 바친 멧돼지 머리(파리대왕)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같은 짐승을 너희들이 사냥해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참 가소로운 일이야!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고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거야.'
사이먼은 자기가 거대한 아가리를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았다. 그 속은 새까맸다. 점점 퍼져가는 암흑이었다.
파리대왕은 인간 본성의 어둡고 사악한 부분을 상징한다. 인간의 어둡고 사악함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며 순수한 어린이의 타락으로써 더욱더 강조시켰다. 잭은 문명을 약탈하고 대중을 고문하고 지성인과 순교자를 죽임으로써 어린이 성가대원에서 야만인, 오랑캐로 변질한다.
나는 인간의 악함이 선함보다 강하다고 생각한다. 악함은 무의식적이자 본능이고 선함은 의식적이고 학습이다. 그래서 타고난 선함은 최고의 재능이다. 요즘 우린 인간의 악함을 너무나 많이 목격하고 피부로 느낀다. 갑질, 인권유린, 익명성을 이용한 사이버 언어폭력 등... 세계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이성 제어와 인식은 점차 향상되어가고 야만성은 점차 사라지지만, 인간 속에 존재하는 파리대왕은 여전히 썩은 내를 풍기며 다른 방법으로 존재를 과시한다. 악한 사람들을 상대하면 사이먼이 파리대왕과의 대화에서 겪은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파리대왕을 쫓아내려면 스스로 선함을 학습하고 실천하는 방법 이외에는 전혀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 선언에서 말한 어떤 권리와 자유도 다른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짓밟기 위해 사용될 수 없다. 어느 누구에게도 남의 권리를 파괴할 목적으로 자기 권리를 사용할 권리는 없다.' -세계 인권선언문_제30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