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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사랑 Dec 03. 2021

기다려줄게

통합과 이해의 가치

말 한마디 못하는 다섯 살 첫째가 유치원에 입학했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첫째가 안타까워서 나는 밝게 웃으며 첫째 대신 열심히 인사했다. "안녕! 친구야. 첫째도 유치원에 왔어.", "선생님 안녕하세요! 첫째 왔어요!"

유치원 부모님들은 따듯한 눈으로 첫째를 바라봐주었다. 첫째에 대해 물어봐도 될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분들도 계셨고 첫째의 행동을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물어보는 분도 계셨다.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우리 반 부모님들께 첫째와 우리 가족에 대한 소개를 적은 편지를 보냈다. 첫째의 장애와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을지도 적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등 하원 할 때마다 마주치는 첫째의 같은 반 친구들이 내가 모르는 첫째에 대하여 이야기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첫째는 장난꾸러기예요!", "첫째는 얼룩말을 가장 좋아해요!"

말 한마디 못하는 우리 첫째가 장난을 친다고? 사람은커녕 장난감에도 관심이 없는 첫째가 좋아하는 동물이 있다고? 엄마 아빠도 모르는 첫째의 모습을 친구들은 어떻게 발견한 걸까? 심지어 "첫째가 오늘 이런 말을 했어요!!"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유치원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9월 말 담임선생님과 20분간 개별상담을 하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은 첫째의 유치원 활동 사진과 활동 작품을 보여주시고 첫째가 나름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설명하셨다. 물론 수업에 참여하기 힘든 부분이 더 많고, 지속적으로 함께 노는 짝꿍은 없지만 같은 반 친구들이 첫째를 좋아한다고 하시며 짧은 영상을 보여주셨다.  


유치원은 매일 아침 모두 등원할 때까지 다 같이 1층 교실에 모여서 기다린다. 수업 시간이 되면 다 함께 줄을 서서 두 명씩 계단을 올라 2층 자기 반에 차례차례 들어간다. 첫째는 계단을 오르는데 도움이 필요하여 마지막에 실무사 선생님의 손을 잡고 천천히 올라간다.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영상은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첫째와 첫째를 기다리는 반 친구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마치 높은 산을 오르듯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첫째를 이미 도착한 반 친구들 모두가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계단을 오르는 데도 숨 막힐 듯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마음을 졸이다가 먼저 올라온 다른 친구들을 반에 들어가게 하거나 아예 첫째를 번쩍 들어서 안으로 옮길 텐데 선생님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놀랍게도 다섯 살 친구들은 자리에 앉아 첫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릴 뿐 아니라 어렵게 계단을 오르고 있는 첫째를 향해 한 목소리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첫째야. 힘을 내! 첫째야. 어서 와!"         

아이들의 응원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그리고 첫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친구들이 응원을 하면 첫째가 힘이 나서 계단을 더 빨리 올라오는 것 같다고 선생님께서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영상 속 아이들 모두 반짝거리고 있었다. 보석 같은 친구들을 만나 우리 첫째도 활짝 웃고 있었다.


어른인 우리는 인내를 배우고 양보를 알고 있다. 그러나 대가가 없어 보이는 배려 또는 양보를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라며 언짢아하기도 하고, 무엇을 위해 효율을 포기하고 손해를 봐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른들 사이에서 사회적 소수집단에 대한 배려는 당연한 일이 아닌 당면한 개인의 선택 문제인 듯 느껴진다.

의식 있는 사람인척 뚜렷하게 드러난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우리는 장애가 있는 사람과 친구는 되지 않는다. 어려워하고 낯설어한다. 나 역시 그랬다. 부끄럽게도 어린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매일 만나는, 말 없고 느긋한 첫째를 그대로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대하고 있었다.


'기다려줄게' 란 동요가 있다. 우리는 친구니까 천천히 와도, 천천히 말해도, 신발끈이 풀어져 잠시 지체해도 괜찮다고. 내가 곁에서 기다리겠다는 노래이다. 첫째와 우리 가족은 이 동요의 노랫말처럼 작지만 만만치 않은 도전에 임하는 친구에겐 기다림과 격려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길. 기다릴 줄 아는, 곁에서 함께 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아지길 꿈꿔본다. 그런 세상에서라면 첫째와 우리 가족이 마주할 내일이 외로울 것이다. 마침내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금천장애인가족지원센터가 주최한 2021년 장애인식개선 컨텐츠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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