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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형원 Mar 12. 2022

삐딱한 수건

2030 성장 에세이


  우리집 화장실 수건대에는 수건이 자꾸만 삐딱하게 걸려있곤 한다.


  일과를 마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로 샤워를 하면, 하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느낌이다. 딱 하나만 빼고. 몸을 닦으려 수건대에 손을 뻗치는데, 수건이 삐딱하게 걸려있으면, 뭔가 하루의 마무리가 삐뚤어진 듯해진다. 몸을 닦고, 수건을 깔끔하게 바로 걸어 둔다. 아마 내가 아침에 급하게 씻고 출근하느라, 대충 걸어 두었던 것 같다.


  아침 알람 소리에 밍기적거리다 침대에서 가까스로 일어난다. 좀비처럼 화장실로 질질 몸을 옮긴다. 샤워기를 틀어 시원한 물을 머리에 쏟아붓는다. 정신이 상쾌해 출근에 대한 의지가 다져진다. 수건대에 팔을 뻗는다. 수건이 또 삐딱하게 걸려있다! 아마 아버지가 밤에 씻으신 후 대충 걸어 놓았나 보다. 다시 한번 바로잡고 하루를 시작한다. 즉시 바로잡아줘야 한다.




  삶이 삐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그것을 바로잡고자 무던히도 애를 쓴다. 우리집 수건을 매일매일 다시 걸듯이 말이다. 몇 년 전, 첫 직장을 그만두고 취업전선에서 세상과 싸울 때도 그랬다. 첫 직장을 6개월 다니고 퇴사했다. 업무강도가 높은 업계였다. 여덟 시에 출근해서, 매일 밤 열 시 열한 시까지 일하다 보니, 삶이 조금씩 삐딱해져 가는 듯했다. 어느 날 옆 팀의 선배가 과로로 쓰러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도 이렇게 계속 삐딱해져 가다가는 이내 넘어질까 두려웠다. 바로잡아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실 재직 중에도 이직하고 싶어서 조금씩 이력서를 넣고 있었다. 한 회사의 1차 면접은 통과한 상태였으나, 회사 일정 때문에 퇴사하지 않고는 최종면접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처럼 멋지게 사표를 쓰고, 친했던 동료들과 소주 한잔하고, 최종면접에 갔다. 떨어졌다.


  서른 넘은 나이에 무직이 되었다.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했다. 뭔가를 해야만 했다. 취업스터디에 나가고, 도서관에 앉아 기업 필기시험 문제를 풀고, 아침에는 신문을 읽고, 미친 듯이 이력서를 넣었다. 그런데 시험문제는 왜 푸는지도 모르고 풀고 있었고, 읽고 있는 신문기사는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출한 이력서가 100개를 훌쩍 넘겼는데, 내 전공과 경력에 맞지 않는 곳들도 많았다.


  그래도 이력서는 열 개를 제출하면 한 개꼴로 붙었다. 그때마다 드디어 바로잡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예상 면접 질문과 답변을 달달 외우고, 면접장에서 어떻게든 열정을 보여주려 했다. 뭐라도 해보려고 아등바등했다. 면접은 줄줄이 떨어졌다. 바로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계속해서 더 삐딱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내 자존감이 우리집 수건처럼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반년 동안을 백수로 지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더니, 기업들이 채용을 줄였다. 나는 바닥을 향해 전속력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다. 예전처럼 예상 질문이나 답변을 달달 외우지 않았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정도만 준비했다. 대표이사님과 면접을 보는데, 예상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면접장을 나오면서, 너무 편하게 본 건 아닌지, 준비를 너무 안 한 게 아닌지 조금은 걱정도 되었다. 며칠 후 합격통지를 받았고, 지금껏 다니고 있다. 업무도 적성에 맞고 조직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으며, 밥벌이는 하고 있다.


  전 직장에서 친했던 동료 몇 명과 아직 연락하고 지낸다. 요즘은 야근을 그렇게 오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업무강도는 여전히 세지만, 어느 정도 워라밸도 가능해지고 있다고 한다. 삐딱한 수건은 희한하게도 발버둥 칠 때는 바로잡히지 않는다.




  어느 날, 엄마가 아침저녁으로 삐딱한 수건을 바로잡는 나를 보시더니 이야기했다. “아들, 네가 계속 수건을 바로잡아 놓는 거였니? 일부로 삐딱하게 걸어 둔 거야. 바르게 걸어 두면, 잘 안 마르고 냄새나.” 몰랐다. 삐딱한 것에도 이유가 있음을. 젖은 면이 마를 시간이 필요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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