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맥주 따르기 5번째 이야기
펍 창립 멤버 중의 한 명인 선임 동료에게 펍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느낀점을 묻자,
"매일 예측 불허한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라며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라고 답했다.
일할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오늘도 무사히 안전하게 일하고 가게 해주세요, 하고 모든 신을 동원해 기도를 드린다. 잔을 정리하다가 잔이 갑자기 깨지기도 하고, 좁은 바에서 요리조리 움직이다 동료와 부딪히는 건 부지기수다.
'진상은 없나요?'라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문제는 다소 덜하다. 보안요원들이 저녁때부터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많이 취한 테이블에게는 알코올 판매를 금하기도 하고, 목소리를 크게 높이거나 소란스러울 가능성이 보일 경우 퇴장시킨다.
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며 맥주를 따르고 잔을 식기세척기에 넣었다 뺀다. 맥주만 만드는 게 아니다. 진토닉을 주문받으면 그 자리에서 진토닉도 만들고 와인 보틀도 따야 한다. 음식 주문받기 전에 테이블 번호도 물어봐야 하고. 일을 나열해서 적어보니 많지 않게 느껴진다.
자, 이제 여기서 조건이 추가된다. 3분마다 2명이 기본 3~4잔을 주문한다. 맥주와 음식 주문량은 당연히 늘고 맥주잔과 그릇들은 쌓아간다. 잔이 모자라지 않기 위해, 바지런히 25잔의 500ml 잔을 넣고 꺼내는 걸 반복한다. 손님들이 한 번에 100명이 들어올 때도 있다.
처음에는 미소를 유지하다가 점점 미소가 사라지고 만다. 너무 벅찰 땐 눈이 아니라 가슴에 눈물이 고일 때가 있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눈에 눈물이 고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약 3년 전, 대학교 졸업하고 이 일을 했다면 매일 일하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나 홀로 처음 가보는 지역을 구석구석 누비며 취재했던 경험들이,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활짝 웃으며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아 지금의 내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순탄하지 않았던 지난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이 오히려 감사하다. 펍 근무는 전혀 다른 일이지만 말이다. 내가 문제일지도 몰라, 스스로를 자책할 만큼 우당탕탕 요란스러웠던 경험들에 비해 펍에서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000으로 파인트 한 잔 주세요."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
를 무한 번 반복하러,
오늘도 출근합니다 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