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균형을 잡아보자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해왔지만, 진리를 찾아서 그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은 없거나 숨어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실제의 삶은 그런 진리를 찾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선각자들의 말을 통하여 진리의 일각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것도 잠시일 뿐입니다. 때때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사색하기도 하지만, 큰 벽에 부딪혀 중도하차하고 좌절감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는 매우 소중합니다. 도덕경에서는 도(道)를 도(道)라고 하면 이미 그것은 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 곧 도(길)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길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길은 늘 한결같이 하나의 길만을 가지 않습니다. 비가 오면 물길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주변 사정에 맞추어서 무리를 범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을 찾아서 가기 때문입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도덕경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최상의 선, 즉 도는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남과 다투지 않는다).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거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무엇을 위하여 참된 삶을 갈망하는 것일까요?
진리를 찾으면 모든 것이 다 행복해지는 것일까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고,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게 되는 기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까요?
한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가족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인가요? 또는 나와 이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가요?
사람의 마음은 불안정하고 이기적이어서 늘 변덕스럽고 자기를 중심에 놓고 사고(思考)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면 사람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나 자신도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변덕과 이기심을 조금이라도 안정적이고, 나뿐만이 아니라 나 이외의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이타적인 것으로 바꾸어서 나와 내 이웃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처해있는 상황(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은 우리(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힘들게 합니다. 그것을 이겨내야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우리의 문제에만 붙들려있게 됩니다.
그런데, 잠시 내 이웃의 눈으로 나를 보면, 혹시 내가 이 세상을 괴롭히고 있는 가해자의 입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약성경의 한 구절을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명심하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속히 하고 말은 천천히 하며 함부로 성내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분노는 하나님의 의로운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온갖 더러운 것과 악을 버리고 마음에 심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혼자서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형제,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배와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고 암초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길(道)위에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