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붉은 수첩의 나라
어디가 공산당인가, 누가 공산당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때가 된 듯하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붉은 수첩을 들고 움직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어디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당의 논리가 어디까지 침투해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정치는 다수결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다수결이란 각자의 의지가 자유롭게 표출된 결과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는 개인의 양심과 의지를 묻어버리고 붉은 수첩 속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정치가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 대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누구의 대표인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인가, 아니면 당 지도부인가? 혹은 그 지도부 뒤에 숨어 있는 더 큰 권력인가?
붉은 수첩. 그 상징성은 강렬하다. 무엇을 지시하고, 누구를 통제하고, 어떤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가. 수첩 속에서 나오는 지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독립적인 의사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 모습은 우리가 비판하던 공산당 체제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우리는 그토록 통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를 강조했지만, 결국 스스로가 그 통제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사실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많이 봐 왔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지시라는 이름으로, 심지어는 조직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양심이 짓밟히는 모습은 반복되어 왔다. 당론이 곧 법처럼 작동하고, 지도부의 입김이 모든 결정을 대신하는 정치 풍경. 그리고 그 정치의 희생자는 항상 국민이었다.
문제는 붉은 수첩이 단순히 한 당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모든 당에서, 모든 조직에서, 지도부의 권력이 강화되고 개인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일이 너무나 흔하다. 의원 개개인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당의 대리인이 되어버렸고, 국민의 목소리는 그 속에서 갈 곳을 잃는다.
결국, 붉은 수첩의 나라에서는 누가 공산당인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조금씩 공산당이다. 통제를 비판하면서 통제를 정당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외치면서 조직의 논리에 순응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 지도부의 지시를 따르는 의원도, 그런 의원을 바라보는 국민도 모두 불편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점점 희미해진다.
공산당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붉은 수첩을 들여다보라. 그 안에 담긴 지시는 단지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이 나라의 정치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개인의 의지가 조직의 논리에 묻히고, 민주주의의 본질이 훼손되는 현실.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산당의 모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