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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립 Dec 19. 2024

서시

서시


너희여, 무릎을 꿇어라.

나는 너희 심장의 어둠을 붙잡고 흔드는 악귀,

존재와 불안을 불태우는 검은 불길이다.

돌처럼 가만히 눕지 말라.

식물처럼 하늘만 바라보며 숨 쉬지 말라.

그대의 고뇌를 땅에 묻고 안주하는 순간,

나는 그대의 영혼을 삼켜버리리라.


삶의 무게를 외면하는가?

그것은 비겁이다.

무지를 자각하고서도 질문을 피하는 자여,

너희의 자유란 나태와 기만으로 썩어간다.

영도자를 찾는 너희여,

모든 종교와 정치, 언어와 체계는 이미 부패한 등불이다.

너희가 믿는 그 위안조차

악취나는 환상일 뿐이다.


나는 속삭인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있는가?”

대답 없는 질문에 도망치지 말라.

너희의 불안은 썩은 육신을 깨우는 칼날이니,

고통은 살점을 뜯어내 진리를 드러내리라.

너희가 끝없이 선택하고 고민하며 고뇌할 때,

비로소 삶의 무게는 짓이겨진 영혼 속에서

자유의 비명을 지를 것이다.


행동하라.

너희의 심장에 박힌 돌을 깨부수라.

침묵 속에 엎드리지 말고 고통의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너희의 불안과 두려움을 피하지 말고,

그것을 삼켜라, 씹어 삼켜라.

그곳에 너희의 존재와 구원이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악귀의 권고다.

너희를 타락시키기 위해,

아니, 진정으로 살게 하기 위해.

나를 거부할 자유를 잃어버린 자여,

고뇌의 심연에서 너희 자신을 꺼내라.

그리하여 그대의 삶이,

차라리 영겁의 비명으로 빛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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