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엔 돈 벌러만 와,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글을 놓은 지 이렇게 오래되었던가. 시간은 정말 징그럽게 흐른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줄 알았던 취준기가 지나고 어엿한 사번을 가진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직장이 지옥인지. 딱 1년이 되기 전에, 나는 비상구에서 주저앉아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1년만 채우고 그만두고 싶다고. 늘 그렇듯 엄마들 눈에 딸자식은 아직 덜 컸기에, 으레 하는 투정이라 생각했다. 엄마한테 혼만 잔뜩 난 채로 그 날선 사무실로 복귀했다. 불면증이 너무 심해져서 약을 먹고 잠들어야 하는 수준이 되었을 때, 나는 입사 전보다 6킬로가 빠졌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도 친구들은 내 얘기를 듣고 우는데, 나는 눈물이 안 났다. 왜 눈물이 안 났는지 모르지만, 당장 하루 이틀이 지나면 또 가야 하는 지옥이라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그냥 그만두고 본인 집에 들어오라던 지니, 꿈이 조금만 수상해도 전화하던 섷과 항상 걱정해 주던 쭈, 리나가 있었다. 그들의 염려와 걱정을 먹고 나는 버텼다.
시간이 지나, 본가에 들를 때마다 말라가는 딸을 보던 엄마가 그만두라고 했다. 엄마도 멀리서 속을 한참 끓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또 살아냈고, 여기서 그만두면 날 괴롭게 하던 그 여자들에게 지는 것 같아서 분했다.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난 또 도망가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견뎠다. 그렇게 퇴근하고 이직 준비를 열심히 했다. 줄줄이 떨어지는 서류 전형은 마치 내가 달아날 곳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 살 숨구멍은 항상 틔인다고, 누구나 아는 기업에 서류가 붙었다. 매일 퇴근하고 늦게까지 집 앞 카페에서 죽어라 필기 준비를 했다. 필기도 붙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덜덜 떨며 면접도 봤다. 최종 합격이었다.
그렇게 면담을 하고,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눈물 한 방울 안 났고, 정신 사납기만 했다. 빨리 정리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그 지옥 같은 곳에서, 내가 마지막이라니 속상해하는 여자들이 참 많았다. 그때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수준이 아니라 심장이 그냥 내장을 훑는 것 같았다. 나는 머저리처럼 나를 힘들게 했던 그 3명의 여자들에게 갇혀서 날 좋아하던 사람들의 애정을 온전히 받지 못했던 거다. 내가 퇴사한다고 하니 수많은 자리를 만들고, 엘리베이터에서 울고, 지하철역에서 울고, 사무실 자리에서도 울었다. 결국 난 사랑받는 사람이었는데, 날 싫어하는 사람에만 집중했었다. 사람은 참 간사하게도 날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 날 싫어하는 사람에 신경이 쏠린다. 왤까. 내가 그 이유를 미리 알았더라면, 주는 사랑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도, 퇴사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 엘리베이터 앞에서 울었다. 나 여기서 너무 고생했구나, 뒤돌아 보니 행복한 순간도 참 많았구나 싶어서. 순간 조금 미련이 남을 뻔했을 때, 아니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그 미친년들 때문에 바로 눈물이 그쳤다.
그렇게 두 번째 직장에 다닌 지 벌써 8개월이 되어간다. 아직은 별 탈 없이 잔잔한 스트레스만 가지고 일하고 있다. 언젠가 또, 내 인생에 그냥 혀 깨물까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이 오겠지만, 나는 이제 그때 나를 사랑해 주던 여자들의 눈물을 기억할 수 있다. 현재의 불행에 너무 매몰되지 않기. 어디든 나 모르게 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기. 눈물 쏙 빼면서 배운 내 첫 직장 회고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