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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Oct 25. 2020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36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Day 36, 7월 17일 브장송


어제의 피곤함과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날려버릴 만큼 화창한 아침이다. 호텔 식당에서 조식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주차장까지 걸어가서 차를 호텔 주차장으로 옮기고 나니 맘이 완전히 홀가분해졌다.


오늘은 브장송의 요새( Citadelle de Besançon) 에 먼저 가볼 예정이다. 이 요새는 강으로 둘러싸인 브장송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100미터 높이 위에 세운 건물이다. 마을에서 요새까지 운행하는 관광용 꼬마열차를 탔다. 한눈에 보아도 높고 탄탄한 벽으로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몽블랑에서 산 인형을 계속 안고 다니는 9살 아들



두강이 굽어져 흐른다.


브장송은 프랑스 북동부 두강에 위치해 있다. 전통적으로 시계 산업이 발달한 곳으로 지금도 마이크로 테크놀로지로 유명한 곳이다.


말발굽 모양으로 굽어 돌아가는 두강이 브장송을 둘러싸고, 이 성은 그 입구에 듬직하게 버티고 서서 적들이 함부로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형상이다. 성벽을 따라 강과 주변 지형을 내려다보았다. 부드러운 강의 곡선과 주황색 지붕들, 공원의 나무들과 막힌 것 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시원하다.  프랑스에서도 손에 꼽히는 녹색 도시라고 한다. 그만큼 숲과 공원이 많은 도시이다.

자연이 만든 해자인 두강과 높은 성벽으로 적의 침략을 막기에 최적인 요새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이 유적지는 여러모로 방문해볼 가치가 있고 재미있는 곳이다. 성안에는 제법 큰 동물원과 역사박물관이 있다. 동물원에는 무려 호랑이도 있다. 이곳은 한국으로 치자면 일종의 놀이공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 같다. 큰소리로 울어대는 염소들에게 관리인이 싱싱한 풀잎을 한 보따리 가져다준다.


사육사를 알아보고 소리를 지르는 염소들


옛 성안 곳곳에 동물들이 살고 있어서 다른 동물원과 매우 다른 느낌이다..


별도의 파충류 전시관도 있고, 처음 보는 새들도 많이 있다. 유리로 만든 대형 수조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손으로 만져볼 수 있어서 좋았다.


커다란 수족관





역사박물관에서는 골동품과 같은 옛 생활 용품을 전시하고 있다. 오래된 주방, 섬세한 레이스 장식의 블라우스.  마치 벼룩시장을 구경하는 듯, 일상생활에 쓰였던 소소한 물건을 전시해 두어서 더 재미있는 곳이었다. 주부라서 그런지 이런 소소한 생활 용품들의 디테일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많은 옛 물건은 요즘 생산되는 것에 뒤지지 않을 만큼 예쁘다.








점심으로 성내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감자칩을 먹었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아마도 동물원이 때문이겠지. 활용도가 떨어지는 성을 동물원이나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신선하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어 코끼리를 전시하던 때가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그런 역사를 설명해주었다.  가능한 한 담담하게 사실만을 전해주고 싶은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감정이 섞인 단어들로 반응을 보인다. 순수한 아이들에게 미칠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고려한다면, 어떤 때는 식은땀이 날 때도 있다.






성이 꽤 넓고 볼거리가 많아서 오전 내내 성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올드 타운으로 내려왔다. 오후에는 특별한 일정을 만들지 않고, 두 강을 따라 산책을 했다. 강 위를 오고 가는 유람선과 사람들을 구경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유유자적 거리를 걸었다. 가다가 흥미로운 상점이 보이면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아마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낯선 도시를 목적지를 두지 않고 걷는 일인 것 같다.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생일 선물을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들렀다. 국제 우편용 봉투를 구매하고, 비용을 지불하고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소포를 보내는 일을 해보았다. 아이들은 외국의 관공서에 와서 살짝 긴장한 모습이다. 아이들은 내가 우편물을 보내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우체국에서 국제 우편물을 보내는 중이다.



문구점에서 새로운 카드놀이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둘은 한참을 머리를 맞대고 카드놀이를 했다. 둘이 함께 노는 모습에 마음을 바라보며  또 흐뭇해지는 엄마이다. 상점에서 사 온 프랑스 과자와 젤리를 함께 먹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커다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지붕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평화롭고 나른한 오후이다.

호텔 방 밖의 풍경


  24시간 아이들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한국에서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나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 저녁에 돌아오면 나는 저녁 차리고 집안 정리하느라 피곤해서 아이들과 긴 대화를 하기 어렵다. 그리고 밤이 되면 각자 방에 들어가서 잔다. 여행은 24시간 내내 함께 같은 공간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집안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함께 하는 시간의 퀄리티가 높다. 그 점이 아이들과 여행하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인 것 같다.



저녁때가 되어 근처 일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참치회덮밥과 초밥, 라멘을 제법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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