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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현 Mar 18. 2021

겁쟁이 엄마의 100일 자동차 여행기#47

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7월 29일 파리 루브르


엄마가 되는 것은 매우 무모하고 어마어마한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일이다. 나는 엄마가 되는 것을 일찌감치 당연한 자연의 섭리라고 받아들인 나머지 엄마의 과업에 어떤 위험천만한 일들이 있는지를 모른 채 엄마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아무렇게나 엄마가 되어버리고 수많은 결정을 내리는데, 그게 아이들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긴 여행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나이고 그로 인해 발생할 아이들 입장에서의 기회비용, 즉 '시간'과 '금전'은 내 결정으로 여행에 쓰이게 된다. 다시 말해 아이들은 100일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다른 또래의 아이들이 온전히 매진하고 있는 학업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런 사실은 여행 내내 나의 뇌리에서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숙소 앞 골목의 빵집은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금방 만들어낸 따뜻한 크루아상, 색색의 케이크, 싱싱한 샐러드까지 하나씩 다 맛보고 싶다. 손님들은 항상 그렇게 하듯이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계산한다. 모든 것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루틴이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창가 옆 테이블에 앉아서 마치 파리에 사는 사람인 것처럼 먹었다. 


하지만 여행객은 진열장에 늘어선 먹음직스러운 빵과 샐러드, 병에 담긴 주스들, 음식을 건네주던 직원의 미소, 건네받은 커피의 향까지 모두 아름답게 포장해서 뇌의 한쪽에 소중하게 저장한다. 










3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파리 뮤지엄 패스를 오늘부터 사용하기로 한다. 


먼저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했다. 루브르의 방대한 작품 수를 생각한다면 반나절 루브르를 관람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느껴진다. 파리에서 한 달 이상 머물 것이 아니라면 루브르 내부를 관람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회의적인 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 루브르에 가는지 며칠 전부터 묻기 시작했다. 그래 파리까지 왔는데 너무 길게 생각하지 말자고 나를 설득하고 관람을 결정했다. 


유리로 만든 그 유명한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통해 지하로 입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한국에서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에 관한 책 두 권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두었다.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작품을 염두에 두고 찾아보는 것이 우리의 반나절 루브르 관람 전략이다.  


딸아이는 작품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관람했다. 특히 어릴 적 엄마한테 혼나면서 항상 붙들고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에서 본 내용을 기억하고 관련 작품을 볼 때마다 멋들어지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지루한 코스였다. 딸은 또 올 수 있냐고 물었고, 아들은 다시는 오지 말자고 했다. 



루브르에서 중간에 점심시간과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6시간 정도 머물렀다. 모두 다리가 천근만근이 되었다.  끊임없이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루브르 관람은 말 그대로 노동이 되고 말 것이다. 다행히 가까운 숙소에서 한 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시내 한복판의 숙소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6시쯤 집에서 나와 샹젤리제까지 걸었다.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뷔통 매장에 깨진 유리,  총에 맞은 건가







여행 전에 아이들과 함께 보았던 영화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2007년)에서 영국에서 온 미스터 빈이 무작정 직진하던 개선문에서부터 곧게 뻗어 난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갔다. 아이들과 그 장면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박물관을 전투적으로 돌아다녔다면, 일정이 끝나고 느긋하게 걷는 이런 시간들은 한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다들 다리가 아파서 택시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오토바이에 뒷좌석을 만든 탈것을 발견하고 가격을 흥정했다. 택시나 지하철을 탈 때와 달리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파리의 밤거리를 비추는 가로등과 에펠타워의 불빛 거기에 센강 주위의 불빛이 두 명의 어린 여행객과 엄마의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듯했다. 




달리며 찍어본 에펠타워


강둑에 한동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태까지의 여정을 되짚어 보기도 하고, 한국에 두고 온 고양이들 이야기도 했다. 한국에 가면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도 했다. 그래도 파리와 런던에는 한국 식당을 찾기 어렵지 않아서 그동안의 한식에 대한 갈증은 꽤 해소되었다.  아들은 계속 순대를 먹고 싶다고 하는데, 순대는 파리에서도 찾기 어려웠다. 


비록 모든 것을 나 혼자서 온전히 실행해야 하는 여행이지만, 이 작은 두 친구들이 나에게 주는 에너지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강변 계단에 앉아서 강 건너 건물의 불빛이 강물 위에 반사되는 것을 바라본다. 아이들이 양옆에 앉아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과 파리의 밤공기는 비현실적으로 행복감을 더해준다. 





숙소의 좁은 계단을 조용히 올라와 매일 저녁 치르는 일정을 소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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