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 아일랜드
#48일 차 7월 31일 파리 앵발리드 (Hôtel des Invalides), 로댕 미술관 (Musée Rodin)
20대 배낭여행을 하던 때에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에 바빴다. 엄마가 되어 두 아이들과 다시 오니 함께 가보고 싶은 박물관도 많고 미술관도 많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여행에도 올바른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겠지. 파리처럼 볼거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자칫하면 마음만 급해질 수 있다. 여유와 부지런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무던히 노력한 8박 9일이었다.
숙소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앵발리드(Hôtel des Invalides)를 방문했다. 세계 1, 2차 대전에 사용된 군수 물품과 자료를 볼 수 있는 군사 박물관과 무기박물관이 있다. 황금빛 돔을 얹은 107m 높이의 파리에서 가장 높은 교회 건물인 돔 교회(Dôme Church)도 이곳에 있다. 이 교회의 지하에는 그 유명한 나폴레옹 황제의 묘지도 있다. 남의 나라 키 작은 지도자의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라서인지 그의 무덤에 왠지 꼭 가봐야 할 것만 같았다.
둥그런 돔의 내부에는 황금 장식과 함께 예수의 승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돔의 수직 아래 바닥은 커다란 원형으로 지하까지 개방되어있고, 바로 아래 지하의 중앙에 짙은 갈색의 육중한 대리석으로 만든 나폴레옹의 관이 있다. 그리스의 신전처럼 관을 둘러싼 대리석 기둥과 벽면은 신화 속 주인공과 나란히 나폴레옹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황금 봉을 든 위풍당당한 나폴레옹의 조각상은 제우스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그가 과연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할 때, 사후에 이렇게 화려한 대접을 받을 거라고 상상했을까?
어제 라데팡스의 쇼핑몰에서 구입한 작은 레이스가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얇은 청스커트를 입은 딸이 유독 기분이 좋은 날이다. 여름내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닌 덕에 아이들은 적도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처럼 피부가 짙은 갈색으로 변해버렸다. 40일 넘게 항상 입던 반바지와 티셔츠대신 오늘 입은 새 옷이 무척 맘에 드는 눈치이다. 평상 시라면 사진 찍히는 거 귀찮아했을 녀석이 제법 포즈도 멋지게 잡아준다.
전쟁 박물관은 천천히 1시간 정도 돌아볼 정도의 크기이다. 세계대전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아이들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이 죽거나 다치고 그로 인해 부상자나 전쟁고아가 생겨났다는 것, 유럽에서는 그중에서 프랑스의 피해가 가장 컸다는 것, 며칠 전 가 보았던 개선문에는 이름 없이 죽어간 군인들이 묻혀 있다는 사실 등을 배울 수 있었다. 각 나라별 군복과 군인들이 전쟁에서 사용했던 물건들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무기 박물관에는 대포와 탱크도 전시되어 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로댕의 박물관(Musée Rodin)이 있다. 그의 컬렉션에는 6000점의 조각품, 8000점의 드로잉, 8,000점의 사진과 7,000점의 예술품이 있다고 한다. 실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진 예술가였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가족들 살림 살이 관리도 버거운 나로서는 그의 에너지와 열정이 부럽다.
실내의 많은 작품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정원에 전시된 지옥의 문이나 칼레의 시민 상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잘 정돈된 정원을 거닐며 최고의 조각품을 감상하는 호사라니.
나는 색감이 풍부한 회화작품을 좋아하지만, 대가의 작품은 조각 문외한인 나에게도 큰 인상을 남겼다. 천재적인 작가의 작품들은 모든 관람객이 돌아가고 나면 살아서 움직일 것처럼 생동감 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살아있는 사람에 직접 석고상을 뜬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했다.
건물의 장식품 정도로만 여겨졌던 조각을 독립적인 창작 분야로 승격시킨 사람이 로댕이다. 특히 그의 작품은 이탈리아 여행 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데, 아이들도 이번 이번 여행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가길 바라보는 것은 과한 욕심이려나.
실내 전시실에서는 고흐가 그린 [탕기 영감]이 전시되어 있는데, 반 고흐를 높이 평가했던 로댕이 구매한 것으로 이외에 두 작품이 더 전시되어 있다. 사는 동안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고흐의 작품을 로댕과 같은 대가가 좋아하고 소장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더 나아가 위로가 되었다. 내가 너무 고흐에 감정이입하고 사는 것 같다. 왜 그렇게 된 건지 한번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
오늘도 만보를 훌쩍 넘도록 열심히 걸어 다녔다. 아들 녀석의 성화에 못 이겨 다시 루브르 박물관 뒤편 한인 마트에 갔다. 이 마트는 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각자 원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드디어 아이들에게는 파리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디즈니랜드에 가는 날이다. 녀석들 설레는 표정으로 잠자리에 든다. 저렇게 신나하는데 최소 2틀을 갈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 너희들이 정말 좋아하는 일정이라 엄마도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