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야기 #1
순교자 추모비

세상 떠나신지 10년만에 발견한 아버지의 자서전

by 윤지상

성공회가 한국 땅에 선교를 시작한지 60년 되는 해 아버지가 영화와 재산을 버리시고 성공회 사제가 되신지 20년이 되고 또 회갑이 되는 해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미국의 스파이라는 터무니 없는 구실로 주님의 집을 지키시다가 순교하신 분들의 추모비가 선교 100주년이 되는 1990년에야 건립되었다. 순교하신지 40년 후의 일이었다. 나는 이 순교추모비 앞에서 다음과 같은 바친다.




"순교비 앞에서"


사제 이원창 신부님 그대는 복되도다.

사제 윤달용 신부님 그대는 복되도다.

사제 조용호 신부님 그대는 복되도다.

사제 이도암 신부님 그대는 복되도다.

사제 홍갈로 신부님 그대는 복되도다.

마리아 신모님 그대는 복되도다.


교회는

십자가에 목박히신

그리스도와 함께 태어났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 분을 믿고

그 분의 성령으로 재창조되어

선으로 악을 극복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이룩하고자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사람들의 모임


복음은

하느님의 의지를

그리스도가 대신 실천하셨고

이는

권력이 아닌 섬김이요

복수가 아닌 용서이고

교만의 아닌 겸손이며

문명의 힘이 아닌

희생이라는 피의 힘.


성찬식 때 그리스도는

수난 전날


"너희는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라."


하셨으며

우리는 성찬식 속에서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의를 실천하겠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못 다 이루신

의를 실천하기에는


순교자

그리스도가 못다 이루신 의를

죽임 당하므로써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를

피로 지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말보다는 육신의

죽엄으로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복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못 다 이루신 고난과

슨교자가 못 다 이루신 고난을

육신으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교회 일은 긍정적으로 협력하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며

말보다는 행동하고

이념보다는 믿음을 앞세우고

미움보다는 사랑으로

꾸짓기 보다는 용서를

신도는 화합하고

하느님이 주신것을

하느님에게 바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

순교자들의 죽엄의 고통

항상 기억하고 기도하므로서

복음전파에

온 몸을 바치기를 맹서합니다.


십자가의 고난

순교자의 고통

이들이 못다한 의를

실천할 때 우리도 복될 것입니다.


(1990/9/28)




나는 이 시를 쓰고 난 후 씁쓸하게 생각한 것은 선교 100주년 기념행사준비위원회에서 기본 계획에도 없었던 일을 억지로 삽입하게 한 것 같아서 씁쓸했다. 심지어는 선교사 한분은 자기 아버지 문제니까. 저렇다고 하는 말을 간접적으로 들었을 때는 다 집어 치우고 싶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순교추모비"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말 것을 하는 후회도 한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죽은 무명용사의 추모비도 있는데 시신도 못찾은 순교자의 추모비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9월 26일은 한인치명자의 날이지만 전날 만도, 당일의 미사를 봉헌하는 교회가 과연 몇 개나 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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