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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Oct 28. 2020

'어린 여자' 대표로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것

"어린 여자 대표"가 사업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

어린 여자 대표로서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오래전부터 공부하며 꼼꼼히 사업을 준비한 것도, 사업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어려웠다. 오직 젊음의 패기 하나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정말 많은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들을 겪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겪어 나가는 중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쯤엔 '전자 세금계산서'조차 뭔지 몰랐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많은 발전을 했다. 나는 지금도 내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 마케팅 인강도 듣고, 중국어 공부도 하고, 최근에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필라테스도 끊었다. 사업이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8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많이 힘들고, 여전히 하루하루 배워 나가는 중이다.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이 언제예요?”라는 질문을 특히 많이 받는다.


물론, 힘든 일 정말 많았다. 그리고 아직도 힘든 일 투성이다.


모아두었던 사업 자금을 사기당한 적도 있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마음의 배신도, 금전적인 배신을 당한 적도 다. 매출이 너무 안 나와서 ‘이번 달까지 뭐가 안되면 정말 폐업해야 하나,’라고 고민한 적도 몇 번이나 있다. 위의 사건들도 정말 힘들었지만, 내가 ‘어린 여자’ 대표로서 사업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적어도 위의 경험들이 아니다. 위의 경험들은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혹은 나의 계산 착오로 인해 일어난 일들로, 대표인 내가 응당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부분들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다.


내가 정말 힘들었던 것은 편견을 이겨내는 일이었다. ‘어린 여자’ 대표이다 보니 겪게 되는 숱한 무시와 편견들을 맞서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왜 '어린 여자 대표'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스물두 살 때의 일이었는데. 나와 우리 직원들이 몇 개월을 준비한 프로젝트가 있었다. 자료까지 완벽히 준비를 한 후, 나는 누군가를 통해서 개인투자자 한 명을 소개받게 되었다. 거의 일주일을 온 직원들과 함께 밤낮없이 준비를 했다. 그렇게 투자자 앞에서 피티를 하고,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개를 해준 지인도 투자자가 상당히 흡족해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그날, 기분 좋게 직원들과 소소하게 회식을 했다. 이틀 후였나? 투자자는 한 밤중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자신과 영화를 보러 가 자고 했다. 우리 막내 삼촌뻘 되는 나이의 중년 남성이었는데, 당황했지만, 나름 정중하게 거절을 했더니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전화를 끊고도 밤새 문자가 왔는데, ‘나는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면서 손도 잡고, 영화도 보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00대 표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그 사람의 번호에 고스란히 차단을 박았다. 아쉽다. 정강이라도 한번 걷어찼어야 하는데.


스물넷. 정말 큰 투자회사 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는 THAAD(사드) 이전에 한류가 붐이었던 상황이라, 우리 회사는 중국 최고의 OTT 유통사와 드라마 계약을 체결했고, 그 회장이 운영하는 투자사의 자금으로 함께 공동제작을 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체결 후부터 그 회장은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계속했다. 결국엔 그것이 너무 스트레스여서 약 한 달 만에 계약 파기를 하게 되었다. 지금 그 회장이라는 사람, 교도소에 있다.  


스물일곱. 사업차 한 모임을 나가게 되었다. 거기서  알게 된 남자 대표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해왔다. 그 남자 대표는 외모도 준수했고 , 젊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다. 성격도 호탕하고, 유머러스했다.

함께 만난 지인들도 다들 한번 만나보라며, 00대표만 한 남자 없다며 부추겼다. 이혼을 했다고는 했지만,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흠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도 그 사람한테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이 조심스레 나를 찾아와서 말을 건 냈다. “00대표 그러는 거 아니야..”라며 말을 꺼냈다. 알고 보니 그는 ‘이혼남’이 아니라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그 남자와 함께 만난 모임 사람들도 이 사실을 다 알고 있었는데도 나와 잘해보라 부축인 것이다. 그 날로 나는 그 모임에 발길을 끊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내 좌우명은, "멋진 여자가 되자"이다. 정작 아직 "멋진 여자"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안다. "Strong Woman have standards and boundaries - 멋진 여자는 자신만의 기준과 점과 경계선이 있다." 나는 위의 무시와 편견들에 나 자신을 굽히고 싶지 않다. 나의 이런 신념이 누군가에겐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떳떳하게 사업하고 싶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나의 가족에게, 나의 직원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표가 되고 싶다.

(이제는 어리다고 할 순 없지만)  이처럼 나와 같은 "어린 여자 대표"들이 편견과 무시, 겪지 않아도 될 사건들을 겪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길 바라본다.


Life is tough, but so are we (인생은 빡세지만, 우리도 빡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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