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는 것 자체가 딱히 겁이 나거나 그렇지 않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다 똑같이 나이를 먹으니까. 나이를 먹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내가 무서운 것은, 내가 서른이 되기 전에 꼭 이루고자 했던 목표들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내 자아를 갉아먹는 것 같다.
나는 항상 좋은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인지 10대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 남들보다 빠르게 대학을 입학했고, (물론 남들보다 빠르게 휴학도 했지만.) 엄마의 자랑이 되어주었다.
또, 좋은 누나이고 싶었다. 내가 처음 번 돈으로 내 걸 사기보다, 워낙 명품을 좋아하던 남동생 명품 지갑부터 사주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밥을 사고, 소소하게 선물을 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들어주었다. 나는 정말 내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였을까?
정작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바라던 것은 뭘까?
나는 그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정말 까맣게 잊고 살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정작 “나란 사람”은 잊고 산 것 같다.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갈 때 그 사람에게 우리의 모든 관심과 시간을 쏟아붓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에겐 그런 관심과 시간을 할애한 적이 있는가?
그래서 난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오직 나를 위한 시간과 관심과 사랑을.
요즘에 난 누군가를 만나고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인 게 좋을 때가 많다.
교보문고에서 읽어보고 싶었던 책을 사 독서를 하고,
1일 1팩을 전전하며 피부관리를 해보고, 평소 따고 싶었던 제과제빵 학원도 알아보고 있다.
내가 나와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나에 대해서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지만, 사람을 많이 가린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퍼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칼같이 잘라내는 때론 냉정한 사람이라는 것.
나는 목청이 엄청 크고 시끄럽지만, 시끄럽고 사람 많은 장소를 꺼려한다는 것. 혼자 방 안에서 책 읽고, 글 쓰고, 로맨스 영화 보는 것이 제일 행복한 집순이라는 것. 20대 초반까지는 강아지나 반려동물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강아지를 엄청 귀여워라 하는 것. 당근 마켓으로 중고 거래하는 것에 정말 소. 확. 행을 느낀다는 것.
그리고,
그간 나는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좋은 사람”이 되고자 아등바등 애썼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어차피 “좋은 사람”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대하느냐에 따라, 나와 그 사람 사이의 온도에 따라 “좋은”이라는 수식어의 여부가 결정된다. 누군가에게 쓰레기 같은 사람이 나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일 수도, 정말 좋은 사람일 수도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