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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 Nov 18. 2020

오래된 연인들의 이벤트

친구들의 풋풋한 연애가 부러울 때

지금까지 나의 모든 연애들은 1년이 넘었다.


스물여덟인 지금까지 만난 남자 친구들이 총 합해서 네 명뿐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기본이 1년이고, 평균이 3년 정도인 것 같다. 그만큼 관계에 있어서 신중한 편이다. 가끔은 이런 내가 바보 같기도 하다. 젊을 때 좀 더 많은 연애도 해보고, 미친 듯 사랑도 해보고, 또 청춘을 즐겼으면 하는데... 누굴 탓하랴. 그러지 못한 나의 성격을 탓해야지.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 둘이 연애를 시작했다.


이제 갓 연애를 시작한 나의 친구 둘의 모습은 정말이지 귀엽고, 풋풋하고 또 사랑스러웠다.


자기야, 여보야 호호 깔깔거리며 나에게 남자 친구들과의 사진을 보여주고, 카톡을 보여주며 자랑하는 나의 친구들의 모습들이 참 10대 소녀들 같았다. 남자 친구에게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들도 정말이지 깜찍했다. '연애 초기에는 나랑 밥 먹을 때 핸드폰 보지도 않았는데, 이제 200일쯤 되었다고 나랑 밥 먹을 때 이제 핸드폰 보더라, '라거나 '우리 오빠는 나한테 자기 힘든 일까지 다 얘기해서 그런 게 좀 그래. 어떻게 리액션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라던가. 아무쪼록 1년 미만의 커플들의 애정행각들은 참 귀엽다. 나는 언제 저런 시절을 겪었었는지, 아니. 겪기는 했었던 건지.. 너무 까마득한 옛날이라 기억도 안 나는데 말이다.


"00아, 너는 지금까지 남자 친구한테 받아본 이벤트 중에 제일 감동받은 이벤트가 뭐야?"


친구들의 물음에 문득 내가 받은 이벤트 중에 가장 좋았던 이벤트가 뭐였지? 생각하게 되었다. 예상외로 가장 먼저 떠올랐었던 건 생일날 선물 받은 명품 가방도, 내 몸만치 컸던 꽃다발도 아니었다.


오랜 연애를 하면서 내가 가장 감동받은 이벤트는 '아웃백 이벤트'였는데 (광고 절대 아님) 

그 주 따라, 유난히 아웃백이 먹고 싶어, "오빠, 나 아웃백 먹고 싶어. 투움바 파스타가 먹고 싶어. 빵에 초코 찍어서 먹고 싶어!!" 징징징 노래를 불렀다.


남자 친구와 우리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였는데, 남자 친구가 일을 마치면 나를 데리러 와, 남자 친구 집에서 자주 데이트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데리러 오지 않고 나보고 직접. 천천히 걸어오라고 했다. 그것도 10분 후에 출발하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그의 집에 도착해보니 아웃백 딜리버리 한상이 차려져 있었다. 내가 일 주간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모든 메뉴가 전부 준비되어 있었던 거다. 정말 태어나서 받아본 어떤 이벤트보다 좋았었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친구들의 풋풋한 연애사들을 들으면서 가끔 부러워질 때가 있다. 

100일 200일을 앞둔 친구들의 풋풋함과 설렘을 들으면서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연애의 시작이라는 그 말랑말랑한 감정이 너무 귀엽고, 부럽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생각해보려 한다. 

설렘을 넘어, 익숙함으로 더 단단해진 오랜 연인의 편안함을. 

소소한 행복으로 서로를 울고 또 웃게 해 줄 수 있는 그 따뜻했던 관계를.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밤늦게 공수해서 상에 펼쳐놓고는 뿌듯하게 웃던 그때 그 사람의 따뜻함을.

 

'처음 같은 설렘보다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는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소중해.

뒤 돌아보면 철없이 온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었던 지난날 그때 또 그립겠지만 -다비치 나의 오랜 연인에게'

찬란하게 빛나는 그 따스함을 떠올려보려 한다. 그럼 조금은 덜 부러 울 수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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