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것들은 없다.
요가경전이라 불리는 『요가수트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지식은 직접 지각, 추론,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증언(권위자)에 의해 얻어진다.”
여기서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을 해주는 이를 그루(Guru)라 부른다.
인생이란 항로를 돌아보면, 나 역시 많은 그루들을 만나왔다.
가정에서, 선상에서, 그리고 지금의 업에서.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의 항로를 비춰준 등불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방향을 제시한 첫 번째 네비게이션이셨다.
졸업 후의 길을 몸소 보여준 선배들, 승선 중 함께한 선임과 승조원들, 육상 근무 시절의 동료와 상사들, 그리고 지금 이 길에서 함께하는 여러 인연들까지.
돌아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고 직급은 형식에 불과했다. 그저 함께 스친 모든 인연들이오늘의 나를 만든 스승이었다.
가끔 힘든 날이면, 문득 떠오르는 분이 있다.
일등항해사 진급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2등항해사로 승선했을 때 함께 했던 일등항해사님이다. 그분과의 항해는 매뉴얼 그 자체였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내어주는 일이다. 형식적인 OJT(Onboard Job Trainning)가 아닌, ‘진짜 가르침’을 받았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OJT가 진행된 어느 날, 데크에서 물으셨다.
“이 볼트가 뭔지 아나?”
볼트는 볼트인데 거꾸로 꽂힌 볼트였다. 정확한 명칭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윈치(Winch)의 파운데이션 볼트(Foundation Bolt)라고 불렸다. 윈치라고 하면 무어링 로프 (Mooring Rope)나 동작부 정도를 관리했지 아래쪽을 본적이 없었을 뿐 더라 관심을 가져 본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분은 말씀 했다. “제자리에 있는 모든 구성품은 다 쓰임이 있다. 그 쓰임을 알아야,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다.”
그 말은 단순히 기계 부품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을 일깨워준 말이었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그 자리에 있는 이유와 쓰임이 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볼 줄 모를 뿐이다.
옷깃을 스쳐간 인연, 지금 내 곁을 스치고 있는 인연, 앞으로 스치게 될 인연
그 모든 만남이 나를 만들고 있다. 어떤 인연은 나를 일으켰고, 어떤 인연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에게 그루는 멀리 있지 않다. 함께 일한 동료의 한마디에, 때로는 나를 흔들었던 한 사건 속에 있다. 삶은 그렇게, 오늘도 관계를 통해 나를 깎고 다듬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루들에게서 배우며, 삶의 항로에서 익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