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에서 만난 인생 풍경
우체국에서 만난 인생 풍경
택배를 보낼 일이 있어 우체국에 들렀다. 팔십 중반쯤이나 되셨을까? 연로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우편번호부를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우편번호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작은 체구에 알이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었다. 불안정한 자세로 서서 책장을 이리저리 넘겨보고 있었다. 힘들어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편 번호 찾으세요? 제가 찾아 드릴게요.”
할머니를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택배박스에는 매직으로 쓴 주소가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 주소를 물어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 후 우편번호를 알려 드렸다.
“주소는 여기 택배용지에 따로 쓰시면 돼요.”
택배용지를 한 장 꺼내 드렸다.
“에구 고마워요. 하도 오랜만에 와 봐서, 옛날엔 다 박스에 썼는데….”
우체국은 손님들로 붐볐다. 대기번호표를 한 장 빼서 할머니 손에 쥐어드렸다. 할머니의번호표 앞으로 대기자가 20명이 넘었다. 나보다도 훨씬 먼저 와 계셨는데 한참 내 뒤에 번호였다. 늦게 온 사람들보다 훨씬 늦은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맨 앞 의자에 앉아 바뀌는 번호표 숫자를 유심히 보고 계셨다. 번호가 바뀌는 기계음이 울릴 때마다 할머니의 표정엔 걱정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무릎 위에 놓여있는 작은 택배박스를 두 손으로 감싼 채 여러 번 주위를 두리번거리셨다. 나도 모르게 자꾸 할머니에게 시선이 갔다.
작은 키에 구부정한 허리, 주름 가득한 얼굴, 얼굴과 목, 손등 곳곳에 새겨진 검버섯, 한 인생을 거의 다 산 삶의 끝자락에 서있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애잔한 마음과 함께 훗날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내 순서가 거의 되었을 때 할머니 자리로 갔다.
“할머니! 저랑 접수창구에 같이 가세요.”
내 택배박스를 올려놓으며 접수 직원에게 양해를 구했다.
“일찍 오셨는데 번호표를 못 뽑으셨어요. 같이 처리 좀 해 주세요.”
접수 직원도 상황을 이해했는지 친절하게 할머니 택배까지 함께 처리해주었다.
“늙으니까 뭐 하나 하기가 이렇게 힘이 들어요. 젊은 양반이 친절도 하네. 고마워요. ”
어르신은 이렇게 고마울 때가 있느냐며 몇 번을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 왔다. 뭐 하나 하기가 이렇게 힘이 힘들다는 말에 마음 한쪽이 찡해졌다.
어르신들이 겪는 흔한 일상을 본 오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살아계신다면 지금쯤 저 할머니 연세쯤 되셨을 친정어머니 생각도 났다. 저 할머니도 한 때 젊고 건강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과 연로해지는 몸을 지탱하며 사는 일은 얼마나 힘이 들까?’
우체국 문을 열고 할머니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길가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봄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봄햇살은 화창했다.
“참 좋은 봄날이네요. 앞으로 멀리 있는 자식에게 택배를 보낼 날이 얼마나 있을지…. 늙으면 받는 것보다 자식에게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다우.”
조금 전에 보낸 택배는 멀리 사는 자식에게 보낸 선물이었나 보다.
‘아, 자식에게 택배를 보내기 위해 연로한 몸으로 우체국까지 나오셨구나.’
“고마웠어요. 바쁠 텐데 노인네까지 챙겨 주느라, 복 많이 받고 조심히 가요.”
“네. 할머니도 조심히 가세요.”
굽은 등을 내게 보이며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삶의 끝자락에서 오는 쓸쓸한 애잔함이 느껴졌다. 서글픈 생각과 함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언젠가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나에게도 찾아올 모습이었다.
‘나도 저 나이가 되어서도 자식들에게 택배를 보내주는 따뜻한 엄마로 살 수 있을까?’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속을 가로지르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내 모습이 실루엣처럼 보였다. 벚꽃잎들은 봄바람을 타고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흩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