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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선 Oct 04. 2020

추석하면 소동파(苏东坡)

달빛 시

  시(詩)나 사(詞)즐겨 읽는 사람들이 소식(苏轼) 소동파(苏东坡)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소식(苏轼 1037년~1101년)은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이자 문장가, 학자, 정치가로 대문호이며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중의 한 사람이다. 자는 자첨(子瞻)이고 호는 동파 거사(东坡居士)여서 흔히들 소동파라고 한다. 시, 서, 화, 문, 사에 능하며 중국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가장 출중하고 위대한 천재로 통한다. 중국에서는 추석에 소동파의 사가 절대로 빠질 수가 없다. 추석+소동파 달빛 시는 그야말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세트이다. 모든 매체에 소동파의 달빛 시가 홍수가 되어 넘치고 넘쳐난다.

  

  얼마 전에 완독한 "소동파전"(임어당 작, 林語堂 )의 서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소동파는 달빛 아래를 서성이는 산책자다." 집약해서 말하는 한마디 평어다. "소식전시집"(苏轼全詩集)의 2700 여수의 시에서 달을 음미한 시가 300 여수에 달한다고 한다. 이 시들에는 고향인 매산(현재 중국 쓰촨성의 眉山)의 달이 있고, 변경(汴京, 허난성의 낙양)의 달이 있으며, 항주(杭州)의 달이 있고, 귀양살이했던 황주(黄州,후베이성의 ), 혜주(광둥성의 惠州), 담주(해남도의 澹州)의 달이 있다. 추석의 달은 소동파의 사에서 가장 짙고 이색적인 절세의 미적인 풍미를 풍긴다. 후세의 소동파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심층 연구하며 발견한 바로는 소동파 인생에서 큰 사건들은 거개가 다 추석에 터졌다고 한다. 일부러 짜 맞춰진 것처럼 말이다. 1079년 추석에 체포되어 길 위에 있었고 추석 지난 사흘 후에 감옥에 갇힌다. 소동파 인생 암흑의 문을 여는 "우타이 시안"(烏台詩案)이다. 추석은 그야말로 소동파에게는 겁(劫)이었다. 가는 길목마다 쌓여 있는 고난과 시련의 강행군 속에서도 시인은 고개 들어 달님 향해 인사하며 그 속에서 미적인 분위기와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서 찬미한다. 어떤 이는 "긴긴밤 통곡을 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라고 하듯이 소동파를 모르는 사람은 인생의 낙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말하고 싶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소동파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어떤 역경에서도 희망을 찾아내 노래한다. 먹장구름과 명월을 올려다보며 인생을 사색한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끝판왕이다.

  또 한해의 추석은 지나가고 연휴도 마지막 날이다. 오늘 같은 날 소동파의 수많은 달빛 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한수를 꺼내 들어 읊어보련다.  바로 1076년 밀주(密州, 산둥성의 诸城) 태수 시절 추석에 지은 시 "수조가두. 명월기시유"(水調歌頭 明月幾時有)다.


  辰中秋, 歡飮達旦, 大醉, 作此篇, 兼懷子由.
병진년 중추절 밤에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여 아우 소철을 생각하며 이 사를 짓다

  앞의 小序는 이 사를 쓴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수조가두. 명월기시유(水調歌頭 明月幾時有)


明月幾時有(명월기시유)

명월은 언제부터 떴느냐고

把酒問青天(파주문청천)

술잔을 하늘에 향해 물어보네

不知天上宫闕(부지천상궁궐)

모르겠노라, 천상의 궁궐에 서있는지

今夕是何年(금석시하년)

오늘밤이 어느 해인지 알 수 없네

我欲乗風帰去(아욕승풍귀거)

나는 바람 타고서  돌아가고 싶은데

唯恐瓊樓玉宇(유공경루옥우)

달빛 속 궁궐이 무섭기만 하구나
高处不胜寒(고처부승한)

높은 곳이라 추위를 못 견딜라

起舞弄清影(기무농청영)

일어나 춤추며 밝은 달그림자 희롱하니

何似在人間(하사재인간)

어찌 인간세상에 있는 것 같다 하리


轉朱閣(전주각)

달빛은 붉은 누각을 돌아

低绮户(저기호)

비단 창문에 나지막이 내려앉으며

照无眠(조무면)

잠 못 이루는 나를 비춰주네

不應有恨(부응유한)

달에게 무슨 여한이 있을쏘냐

何事長向別時圆(하사장향별시원)

어이하여 이별해 있을 때만 둥근 것이냐

人有悲歡離合(인유비환이합)

사람에게는 슬픔, 기쁨, 만남 헤어짐이 있고

月有隱晴圆缺(월유음청원결)

달에게는 어둡고 밝고 둥글고 이지러짐이 있으니

此事古難全(차사고난전)

이 일은 예로부터 온전하기 어려워라

但願人長久(단원인장구)

다만 바라건대 오래오래 살아서

千里共婵娟(천리공선연)

천리 밖에서도 함께 고운 달을 감상할 수 있기를


  소동파가 41세 때, 밀주(密州,산동성의 诸诚) 태수 시절인 1076년 추석밤,외로움을  술에 의지한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 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달을 바라모며 깊은 상념속에 빠져든다. 작품 속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하나는 왕안석(王安石)과의 다른 정치견해로 피해 떠나온 도성으로 복귀하고 싶은 바람과 여전히 냉랭한 현실의 차이에 대한 자신의 아쉬움이고, 또 하나는 도성을 떠날 때 본 뒤로 몇년동안 만나지 못한 아우 소철에 대한 그리움이다.

   석의 둥근달이 덩실하니 떠 있는데 아우의 얼굴이 달에 겹쳐지며 지난 세월의 추억 속에 잠겨 든다. 마음속에 가득 품고 있으면 한 공간에서 달구경을 같이 하냐 안 하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우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을 듬뿍 담아 일필휘지 한 이 작품은 천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도 달빛시 중 최고의 명시로 회자된다.

  소동파의 이 작품은 소탈하고 호방하고 적극적인 낙관정신(乐观精神)과 깊은 사색, 철학적이고 요원한 경계가 잘 어우러졌다. 苏轼 대표작 중의 하나라 할 만하다.

  해마다 추석이면 도배를 하는 소동파의 달빛시, 올해같이 희한한 추석에 읊으니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유명한 여가수 왕페이(王菲)가 부르는 가요 버전을 곁들여 들으니 더 애절하다. 톡방에는 또 누군가가 소동파의 다큐멘터리를 공유했다. 이미 서너번은 봤는데 또 보고싶어진다. 소동파의 매력은 끝이 없다. 보고 또 봐도 새로운 것이 올라온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소동파를 탐독하고 빠져 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빠져드는것이 소동파의 매력이다.

  파란만장한 한생을 살다 간 소동파, 정녕 그는 우리들 마음의 둥글고 밝은 달이다. 믿고 따라가는 수많은 외로운 영혼들의 마음을 비춰주는 밝은 불빛이고 위로이며 힐링이다. 다음 해의 추석달을 기약하며 큰 소리로 읊는다, 소동파의 달빛을.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미를 찾아내는 심미안과 생활자세에 녹아들고 싶다. 호매롭고 초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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