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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봇 Oct 18. 2020

식당, 사라지다

문을 닫은 식당과 그 회고에 대한 고찰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만두를 주제로 하는 트위터와는 달리 블로그는 일상에서 다녀온 모든 음식점들을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1년에 평균 200개 정도의 포스팅을 쓰다 보니 5년이 지난 지금에는 1,000개가 넘는 맛집 일기가 쌓였습니다. 자화자찬입니다만 꽤나 부지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해올 수 있었는지 신기해하거든요. 스스로도 지난 기록을 죽 돌이켜보면 괜히 뿌듯하고 그렇고요.


 지난 일기를 돌이켜보며 추억팔이에 빠져있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1,000여 개의 식당들 중 과연 얼마가 지금까지 영업 중이고 문을 닫은 식당이 얼마나 있을까? 제 포스팅을 본 사람들이 문 닫은 음식점을 찾아갔다가 헛걸음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지에 대한 걱정도 없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 의문은 단순히 호기심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았을 테지요. 그리고 원체 요식업 시장이라는 것이 이런 전염병 이슈가 없더라도 오랫동안 장수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제가 다녀온 식당들 중 폐업한 곳을 자동으로 뽑아주는 프로그램 같은 것은 있을 리 만무합니다. 폐업한 식당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직접 검색해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록 검색창에 지역과 상호명을 검색해보고 6개월 이내 후기 포스팅이 전혀 없으면 폐업을 의심해봅니다. 긴가민가하면 지도에도 다시 검색을 해봅니다. 포털사이트의 지도 페이지는 음식점의 현황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사이트 중 하나니까요. 여기에도 검색 결과가 없으면 이 식당은 폐업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상호명으로 블로그 검색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가게 있을 때가 정말 좋았는데 지금은 아쉽다 하는 푸념이 있는가 하면, 이용권을 선불로 구입했는데 가게가 코로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보입니다.


 폐업 여부를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포털 사이트 지도에 링크된 인스타그램 계정을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근 50주째 새로운 피드가 올라오지 않은 계정도 있고, 아예 업종을 바꿔 새로운 장소에서 새시작을 한 사장님도 있습니다. 어쩌다 유명한 닭강정집을 닫고 냉동삼겹살집을 새로 열었을까 하고 궁금해합니다. 이 가게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그 사정은 사장님만이 알고 있겠지요.


 검색 결과가 다양한만큼 불과 몇 시간 만에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큰 인상을 주지 못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가게는 고개를 갸웃. 한편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음식점도 있습니다. 처음 가는데도 친절하게 맞는 사장님이 있는 가게, 어린 청년들이 개성과 열정을 듬뿍 담아 일구어낸 조그마한 가게. 이런 가게는 검색하기 전부터 없어지지 않았기를 내심 기대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영업 중인 것이 확인되면 마음속으로 기뻐합니다. 


물론 모든 가게가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업해야 마땅한 식당이란 것은 없습니다. 사람의 입맛이란 것은 천편일륜적이지 못하니까요. 저에게 너무 좋았던 식당이 다른 사람들에겐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신기하게도 이번에 정리한 폐업 식당 리스트 중에서 만두 전문점은 없었습니다. 아마 만두 전문점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오랜 역사와 내공을 담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하지만 제가 애정하던 만두 가게가 사라졌던 경험은 있습니다. 중년의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만두가게. 동네에 있던 이곳은 꼬시래기라고 하는 해초를 넣어 만든 날치알해초만두가 시그니처 메뉴였습니다. 날치알과 해초의 톡톡 터지는 식감과 부드러운 만두피가 조화를 이룹니다. 해초의 짭조름한 바다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만두. 이렇게 개성 있는 만두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어서 만두 봇 계정에서도 꽤나 힘을 실어 소개했었습니다.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이런 특별한 만두가 동네에 있다는 것이 괜히 기분이 좋았는데요, 아쉽게도 어느 날 문을 닫았습니다. 


 사장님의 건강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상가의 비싼 임대료가 문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 문을 닫는 가게들은 다 각자만의 사연이 있을 테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동네의 명물인 해초 만두 지키기 위원회라도 발족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껏해야 한 달에 한두 번 만두 한 접시를 사 먹을 뿐인 우리로서는 가게 문을 닫는 사장님의 결정, 그 고민의 무게를 차마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김포 어딘가에 다시 가게를 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장님을 동네에서 떠나보낸 저로서는 그저 새로운 곳에서 더욱 성공하시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지나치던 장면이 있습니다. 만두를 빚는 사장님의 바쁜 손짓, 그리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던 솥이 새삼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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