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학도사용쌤 Sep 04. 2021

생각의 오류는 칠흑같은 밤바다

어떻게 수학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나는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가?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수업도 달라진다. 나는 어떻게 수학 공부를 시작했던가? 


오산중학교 1학년 10반 56번 서정용


중학교에 처음 입학한 32년 전, 우리 반에서 내가 키가 가장 크다는 담임선생님의 명분으로 나는 반장이 되었다. 유경렬 선생님은 학교에서 무섭기로 가장 악명이 높은 수학 선생님이셨다. 수학 수업은 우리에게 유쾌한 시간이 아니었다.

"날이면 날마다 돌아오는 5분 테스트~! 책 덮어!"

수학 시간마다 평균 점수 아래 학생들은 찰진 매질을 겪어야 했다.

반장이라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에 유경렬 선생님은 오산 남촌동 허름하고 좁은 집에 사셨다. 한눈에 봐도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퇴근 후에는 야학에서 수업을 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이 자신 있는 과목은 아니었다. 중학교 수학은 더욱 어려웠다. 중학교 첫 시험인 중간고사 성적은 60점이었다.

성적표가 나온 날, 담임 선생님이 교무실로 부르셨다.

"넌 수학 선생님 반장인데 수학 점수가 그래서 쓰겠냐? 내일부터 수학반에 참여해라"


수학반은 전교에서 수학 성적이 우수한 60명을 선발해서 방과 후에 특별 지도하는 학교의 선별 집단이었다.

시골 학교였고 동네에 제대로 된 학원도 없어 학교에서 의욕적을 꾸린 엘리트 집단이었다. 내가 어리긴 했지만 공부할 기회를 주신 은혜를 알만큼 컸던 것 같다. 난 특혜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오후 4시, 학교 수업이 끝나고 다른 학생들은 귀가하지만 수학반은 수학선생님 교실에 남아서 저녁 7시까지 각자 자습 중심으로 수학 공부를 했다. 매주 금요일은 3시간 동안 경시 5~6문항으로 시험을 치렀다.

선생님의 강의가 아닌 스스로 수학 문제집을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인수분해를 스스로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인수분해 공식을 배우고 문제를 푼 것이 아니었다. 공식 없이 인수분해를 해결했다. 개념을 배우고 문제 유형을 익히고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통해 문제를 먼저 접하고 개념과 유형을 나중에 깨우쳤다. 수학경시 문제를 3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것은 지극히 곤혹스럽다. 1학년 때 선별된 60명의 학생들은 하나둘씩 포기를 선언했다. 졸업할 쯤은 11명으로 줄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3년 동안 날마다 3시간 동안 수학 문제와 씨름한 11명의 입학 실적도 우수했다.

고2 시절에 방황한 나를 제외하고 모두 과기대와 서울대에 들어갔다. 나는 수학으로 지금껏 먹고살고 있으니

내가 가장 큰 덕을 보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수학을 간결하고 정돈된 풀이와 답이 딱 떨어지는 깔끔함이 있는 과목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수학 문제를 풀 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수많은 생각의 오류 더미 속에 허우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다. 마치 칠흑 같은 밤바다를 헤매고 있는 무력하고 쓸쓸한 뱃사람이 정확한 비유다. 겨울바다를 주로 그린 프리드리히 작품을 보면 수학 문제를 풀 때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 방랑자 1818년 작품


오류의 바다에 혼자 던져진 쓸쓸한 모습이 대부분의 수학 공부에 대한 적합한 표현이다. 대부분 답이 나올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답을 찾았을 때 기쁨은 더욱 큰 것이다. 세계적인 수학자 오카 기요시는 이렇게 비유했다.

"수학의 발견의 주는 기쁨이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나비를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들판을 헤매다가 나무에 앉은 아름다운 나비와 마침내 맞닥뜨렸을 때의 황홀한 느낌과 비슷하다!"


오카 기요시 교수의 학창 시절 일화가 발견의 기쁨을 적절하게 보여준다.


두 시간에 걸려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풀었다는 확신에 나도 모르게 "해냈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감독관으로 들어와 있던 야스다 선생과 주위 학생들이 모두 오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웃었다.

연필을 집어 들고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공원으로 달려가 해가 저물 때까지 벤치에 누워 있었다.

그 뒤의 시험을 몽땅 내팽개친 채였다.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인생에서 수학의 발견의 기쁨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학생을 생각의 오류라는 거대한 바다에 직면하도록 세워줘야 한다. 선생은 응원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한다. 생각의 오류를 응원해야 한다. 틀린 것을 고쳐주기에 급급해서는 안된다. 틀렸다는 시도가 중요한 지척이 되도록 메모하고 체크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래서 수학 학습지도에서 노트법이 중요하다. 결론적인 단정한 풀이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리는 잘못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행착오와 오류를 그대로 보존하는 노트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면지에 풀고 버리는 수학 공부가 가장 나쁘다. 끊임없이 시도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노트에 그 발자취를 남겨야 어제와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결국 아이는 수학이 아닌 사람을 배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