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새로운 지혜를 직면하면 툴툴거리면서 거부하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우치고 받아들이곤 한다. 이 전의 아집을 부끄러워하고 이젠 달라졌으니 모든 문제를 해결한 듯한 오만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오만함도 얼마 못 갈 텐데...
그럼에도 지금 느끼는 풍족함은 그득하다.
이젠 정말 다 깨우친 듯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깨우친 듯하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데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망설여진다.
'내게 맡겨진 학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식을 심어주고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사뭇 뜸을 들이더니 별거 없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며칠 전 어느 수학학원 원장의 잘못된 선행 수학의 문제점을 유튜브로 시청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허영이 만들어내는 폐단을 공감했다. '맞아! 이게 우리 교육의 문제야! 내가 말하던 거잖아' 깊이 수긍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기에서 끝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과 학부모의 허영으로 공부가 그릇된 길로 가는 문제점이 있지만, 사람의 허영이 쉽게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수학 문제 하나 이해시키는 게 쉽지 않다. 하물며 수십 년 동안 쌓인 사람의 기질과 관념을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 사람의 허영을 버리지 못했다고 가르침을 포기할 것인가? 수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늘 판을 처음부터 다시 짤 수 없다.
학생과 학부모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셀프리더십 교육을 시작했다. 물론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변화된 건 역시 나였다.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선수 교체는 없다. 인생에서 남겨진 시간도 별로 없다.
바꾸고 싶었다. 입시 수학만 하다가 어렸을 때부터 내 구미에 맞는 학생을 만들어보자는 의도로 초등학생 수학을 시작했다. 지금은 중3인 유나가 초등 4학년 일 때, 한심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평행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선생님~ 나란히 말이죠?"
유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똑하다.
4~5년을 가르치면 주 1회만 수업해도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으로 만들 거라 기대했다. 지금 고1 학생들은 수업 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 지식을 내가 일일이 심어주어야 한다.
입시 수학만 가르칠 때는 다른 선생님들이 초, 중학생 시절을 가르친 애들을 받아서 고등학생 시기에 내가 가르친 것이고 지금 학원 아이들은 내가 뿌린 씨앗이다. 내가 키운 아이들이라고 모두 자기 주도가 확실하게 세워진 것도 아니고 남들이 가르친 아이들이라고 기초 학력이 부실한 것도 아니다. 이제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가르침에도 다양한 전술이 필요하다. 모든 경우에 통용되는 불변의 진리는 없다.
드라마 <미생>의 한 대사가 수학 교육에도 필요하다.
"네 바둑이 늘지 않는 이유를 알려줄까? 너무 규칙과 사례에 얽매여 있어. 당연히 수는 연구하고 학습해야 하지만 불변의 진리가 있다면 바둑이 그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