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오랜만에 홍대에서 만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글월이라는 편지 가게에 처음 가보게 되었어요. 편지지를 고르는 친구와 함께 가게를 구경하다가 타인의 편지를 읽을 수 있는 <펜팔 서비스>를 발견했죠. 편지함에 꼿힌 수많은 편지 중에 “INFJ가 쓴 근황 토크 및 고민 편지입니다”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유형 검사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마침 친구와 MBTI 이야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또 이름 모를 누군가의 근황과 고민을 읽어볼 기회는 좀처럼 없으니까요. 재밌는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편지를 읽게 되었어요.
편지로 읽힌 당신은 어려운 순간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코로나19로 직격타를 맞은 여행업계에 종사하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만의 무기를 고민하는 사람. 다이어트를 13kg나 성공하고도, 변화를 고민하는 사람. 소소하게 적혀 있는 다양한 근황 속에서 당신의 그런 점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방향을 잃은 고민이 아니라, 나아가고자 하는 고민을 읽게 되었던 것 같거든요.
당신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고 쓰시며 편지를 읽는 저의 ‘잦은 생각’이 무엇인지 물어보셨는데요. 오늘은 그 답변으로 펜팔의 끝을 맺어 보려고 합니다. 질문을 읽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생각’이 아니라 ‘말’이었는데요. 제가 무의식적으로 자주 중얼거리게 되는 혼잣말이 있거든요. 물론 생각과 말은 다르겠지만 또 어떤 의미로는 말과 생각은 생각보다 가까울지도 몰라요. 혼잣말은 그야말로 무의식의 일종이니까요.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요. 회사로 출근할 때. 피곤한 약속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마치 배고프지 않은데도 습관적으로 “배고파”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요. 가끔은 주말에 집에 늘어지게 누워있으면서도 무심코 “집에 가고 싶다”고 중얼거려 스스로도 놀라고는 합니다. 집이라는 단어가 물리적인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거든요. 저는 때대로 죽음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는 사람인데요.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무기력에서 발산되는 죽어서 편해지고 싶다는 말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당신은 나카시마 미카라는 가수를 알고 계신가요? 박효신의 <눈의 꽃>이 나카시마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곡이라서, 한국에서도 제법 알려진 일본 가수입니다. 나카시마의 노래 중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순간들이 죽음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 가사가 아주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또, 죽고 싶은 이유를 늘어놓는 가사들이 역으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을 전달해서 놀랍기도 해요. 어쩌면 죽음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만큼 살고 싶은 마음이 앞서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 오늘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말하고 말았는데요. (웃음) 당신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당신도 집에서도 집에 가고 싶어지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