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세 번째는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나는 여자친구 집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하루만 자고 아침 일찍 집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미루다 보니까 어느새 이튿날 저녁이 되어 버렸다. 하루 더 자고 갈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고 있었차에 마침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안 오니?
거의 처음 들어보는 엄마의 차가운 목소리. 적당한 핑계를 대며 내일 아침 들어가겠다고 말하려던 마음이 순식간에 목구멍에서 달아났다. 전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여자친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조용히 내 가방에 짐을 넣었다.
-아…혹시 화났어…?
-…용호야.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친할머니가? 엄마도 방금 들었어. 아빠는 괜찮아? 응, 지금 아빠랑 장례식장 갈 거야. 너는 내일 와.
내게 친할머니는 아빠의 엄마라는 의미 외에 별다를 것이 없었다. 할머니와 손주 사이에 각별한 애정이나 추억도 없고, 엄마가 친할머니를 보살피며 고생한 것만 떠올랐다.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충격이었지만 어떤 감정의 동요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냥 아빠가 조금 걱정됐다. 최근 몇 년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는 이야기는 전해 듣기는 했었지만 갑작스러웠다.
회사에 사정을 설명하고 휴가를 냈다. 아침 일찍 장례식장에 가니 모르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아빠는 나를 데리고 장례식장을 한 바퀴 돌며 인사를 시켰다.
-네가 용호구나? 몰라보게 컸다.
-내가 누군지 알겠니?
모르는 얼굴을 한 사람들이 그렇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가 칠남매의 막내라는 것을 그 날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평소 큰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밖에 안면이 없었는데, 이름 모를 고모들이 넷이나 있었구나 싶었다. 평소 명절에도 잘 만나지 않아서 친가 친척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저녁 늦게 친척들이 모두 모여 할머니께 절을 올렸다. 친척들이 워낙 많아서 특실을 빌렸는데도 발을 디딜 공간이 부족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반. 나와 엄마는 영정이 있는 방 밖으로 살짝 밀려나 두 번 반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별 게 없었다. 다음 날 할머니를 화장터와 묘지로 발인하기 전까지 가족들은 식장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 탓에 조문을 오는 손님은 거의 없었다. 나는 구석에서 조용히 수필집을 하나 꺼내 읽었고 엄마는 내 옆에 앉아 쉬었다. 가끔 고모들이 와서 어렸을 때 아버지와 꼭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갔다. 아빠와 남자 어른들은 각자 조용히 술을 마시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나를 포함한 손주들이 할머니의 관을 들었다. 관은 생각보다 묵직했지만 시신이 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볍기도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몸집이 많이 줄어든 채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의 말로는 그 이후로도 할머니의 몸에서 살들이 계속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돌아가시기 전에는 이빨도 모두 빠지셨다고 했다.
큰아버지의 아들인 사촌형이 영정 사진을 들었다. 친척들은 영정사진과 관을 따라 장례식장을 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일렬로 걷고 있는 스무 명이 넘는 친척을 봤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나의 가족이라는 것이 아주 조금 실감이 났다. 할머니의 관을 받친 손이 빠지지 않도록 힘을 강하게 주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화장장는 인천가족공원 안에 있었다. 그곳에는 가족을 화장하기 위해 찾아온 가족들이 잔뜩 있었다. 우리는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할머니를 화장할 수 있었다. 잿가루가 됐어…. 고모 중에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유리창 밖에서 기계에서 나온 회색 잿가루가 정리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잿가루.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재가 되어버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장례는 그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손자가 들어야 할 관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며, 자식이 기억해야 할 할머니의 모습은 오직 영정으로만 남는다. 장례라는 것은 결국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짜여진 오래된 관습이니까. 우리는 그 오래된 커리큘럼에 따라 죽음에 대해 더디게 배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