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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 Jun 14. 2022

나를 알고 너를 알면

참 다르다고 생각을 할 수 있어.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다. 원래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긴 한데, 평소와 다르게 열이 난다며 코로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왜냐면 함께 일하는 곳에서 확진자가 있었기에 가늠할 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양성이 나왔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목이 아주 많이 아프다고 한다. 어젯밤에 코로나 확진인 줄 알면서도 밥을 함께 먹었는데 오늘까지 나는 음성으로 나온다. 증상도 없고, 멀쩡하다. 일을 참 많이 하는데 이참에 쉬어가라는 뜻인가 보다 생각하며, 나름 밥 해먹이는 중. 후유증이 없길 바란다. 얼마 전에도 크게 느꼈던 일이지만 작은 일에도 어려움이 보인다 싶으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몇 통의 연락을 받았는데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주는 마음은 어떻게 설명할 길 없이 참 따뜻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한 번 떠올리고 안전을 안녕을 빌어준다는 일이 그렇게 감동일 수 없다. 그게 참 문득 감사하다. 정말 감사해. 

뭐랄까 나는 어릴 적부터 사사로운 일에 의미 부여를 하고 애쓰며 살았다. 그래서 상처도 많이 받고, 의기소침해진 적도 많았지만 그 마음의 큰 장점이 있다면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루에도 수십 번 행복한 순간과 마주치게 된다. 반면에 야망이 없는 편이라 대성할 팔자는 못된다. 가끔 독하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나와는 달리 큰일을 해내는 사람들을 보며 나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나와 참 다르다. 이 마음을 갖기까지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나와 참 다르다.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질투하고 배 아파했다. 그랬다. 배 아파하고 부러워했었다. 부러운 마음은 요즘도 가끔 든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를 제대로 파악하고 내가 주체가 되어 현상을 바라본다. 부럽다는 단어를 그때도 지금도 쓰지만 의미는 그때와 아주 다르다. 

혼자서도 잘 자라는 몬스테라를 문득 바라본다. 잎이 쭈글쭈글. 새싹이 자라날 땐 휘청이며 허리를 세우다가 연한 잎을 지나 색이 짙어지면 줄기도 튼튼해지고 해를 향해 에너지를 뿜어냈다. 지금은 자꾸만 고개를 푹푹 숙이면서 땅으로 파고들려고 하네. 몬스테라 키우면 자꾸 쓰러지려고 해서 지지대를 해주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또 이게 삶이랑 닮은 것 같고 그렇네. 

어른의 시간에서 1년이란 세월은 자라나는 아이들과 달리 큰 변화가 없단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마음에는 해마다 큰 변화가 생긴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보일러가 없는 호주 유닛에는 보일러 잘 안 틀어주는 한국의 어느 가정집처럼 난 털 잠바를 입고 있다. 케언즈에서 웬 털 잠바라니. 그런데 안 입으면 춥다. 오늘 털옷을 꺼내 입으며 한국의 정서가 생각이 났다. 그래서 글로 옮겨본다. 나의 문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관계는 틀어진다.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벅찬 감사함을 선물처럼 받는다. 그리고 간사한 마음으로 앞으로 더 잘해야지 하는 순간 내 멋대로 실망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게 다 의미 부여 때문이다. 

이렇게 글 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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