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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Dec 14. 2024

오!

사설교육에서 처음 칭찬 받은 숫자 5

인간을 파악하는 테스트는 참 다양하다. 내가 한창 빠졌었던 다중지능 이론, 요즘 열일하는 mbti, 청소년들에게는 직업성향검사로 홀랜드니 스트롱이니! 결국 그에 따른 결과로 한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는 도구이지만 너무 맹신하면 100명의 인간이 100가지 이상의 성향을 갖고 있는데 기껏 32가지나 많아야 50가지?? 정도로 파악하게 된다. 대한민국 인구 5천만 명을 고작 저 정도로 파악하는 건 너무 큰 무리수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리지는 않아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거나 상대방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면 '아.. 저 사람 성향은 저래, 저 사람은 이런 특징이야'라고 나 자신을 이해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게 됐다.



다중지능 이론을 난 참 좋아한다. 8가지 지능 중 상위 3가지 지능으로 한 사람의 강점지능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강점을 키워주는 너무 간단하고 쉬운 해결책을 준다. 물론 내 아이에게 적용하라면 세상 어떤 것들을 갖다 붙여도 모자라지만 다중지능으로 접근하면 사교육을 시킬까 아니면 그냥 여행이나 갈까, 아니면 집에서 어떻게 교육시켜 주는 게 좋을까 등등 아내와 크게 부딪힘 없이 계획 정도는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놈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2학년 말이 되면서 아이의 학교 숙제나 그놈의 중요하다던 서울대 가는 방법은 국영수 중심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는 옛 말처럼 국어와 수학을 집에서 내주는 숙제로 열심히 알려주고 있다.

아내는 언어지능이 매우 높고, 부수적으로 IQ도 꽤 높다. 그래서 내 학창 시절,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말 잘하고 똑똑한, 그런데다 만약 재수까지 없다면 정말 최악의 사람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일 수 있다. 아내의 학창 시절을 들어보니 아마도 내가 진짜 싫어하는 부류의 아이였던 것 같다. 말 잘하고 똑똑하니까 나처럼 두서없이 말하는 아이들의 대화를 어이없어하는, 여하튼 아내는 그런 상위 클래스로써 지금도 같이 글을 읽다 보면 나는 반도 안 읽었는데 이미 다 읽고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놈도 그 지능을 잘 받았는지 책 읽는 속도는 그리 빠르진 않지만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말도 곧 잘한다. 국어 숙제를 도와줄 때면 아내도 큰 스트레스 없이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수학이었다. 정말 국어와는 다르게 기가 막히게 못한다. 수의 개념도 없고 크고 작다의 개념도 없다. 한 자릿수 덧샘을 하다 두 자릿수로 가면 이해 자체를 못한다. 응용력을 떠나 이 쉬운 걸 왜 이해 못 하지 라며 아이의 똘똘함이 수학과 만나는 순간 멍청함으로 쉽게 변했다.

"찰리 한! 너 수학 잘했다며! 쟤는 왜 저래?"

결국 참다못한 아내가 전화해서 나를 다그친다. 음... 글쎄... 왜 그럴까 어째서 못할까??

그래서 어느 날 아내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여보! 나 수학 진짜 되게 못했어!"



내가 처음 사설학원, 그러니까 27년 전에는 사설 학원이라고 해봐야 주산 학원이었고 주산학원에 가서도 주판 자체를 이해 못 했다. 답답한 어머니는 방문학습지를 신청했고 그 27년 전 내가 처음으로 칭찬받은 숫자는 바로 숫자 5였다.

학습지에 나온 숫자 중 5를 따라 그렸더니 방문학습 선생님은 본격적 영업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앞에 있는데 나에게 숫자 5를 그려보라고 하더니 똑같이 그리는 걸 보곤 "어머니! 이 아이 보세요. 너무 잘 그려요!"

라며 이걸 못하는 아이가 세상에 어딨냐며 못마땅해하는 어머니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번 더 해보라며 세상 미해결 방정식 문제 푼 마냥 초특급 칭찬을 계속했다.

어머니도 어이없었겠지만 그렇게 칭찬하는 선생님과 신나서 그리는 내 모습을 보고 그만 방문학습을 신청했었고 그 칭찬의 응원에 힘입는 나는 그 뒤로 매우 열심히 학습지를 풀다가 역시나 밀리고 밀리고.... 모두가 아는 결말로 끝났다.

수학 자체는 참 어려웠다. 수학이라 말하기도 애매했다. 그냥 단순 숫자 더하고 곱하고, 4칙 연산이니 산수라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산수를 너무 못했던 나도 언어지능에 약간은 소질을 보였던 시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매우 무서운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지만 하지 못해서 수업이 종료되고 아이들이 다 떠난 교실에 앉아 책 한 권 읽고 그 책을 요약할 때까지 집에 못 가게 했다.(그 시절엔 공교육의 파워는 앞도적이었지)

울상으로 책을 읽고 정리를 해서 선생님께 보여드렸는데 그 무서운 선생님이 나를 보곤 내일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자 라며 특급 칭찬을 해줬다.(그래서 여전히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에게도 약간의 언어지능에 대한 소질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교육으로 와르르 무너졌었다. 모든 지능에 두각이 없이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딱 아내와 같이 말 잘하고 머리 좋은데 재수 없는 친구를 만났다. 근데 심지어 그 아이는 수학도 잘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100점 중 50점도 못 맞힌 나는 담임선생님의 지도하에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됐고 그건 또 학교 수업이 끝난 후였다. 그놈의 나머지 공부라는 말이 너무 싫었는데 혼자가 아닌 하필 그 재수 없고 머리 좋고 말 잘하고 수학도 100점 맞는 여자 아이를 내 선생님으로 붙여줬다.

그 아이는 날 처음 보는 순간부터 무시하고 한숨 쉬고 어떻게 이것도 이해 못 하지 라는 언짢은 표정으로 날 알려줬다. 그 후로 난 저런 부류의 아이들을 매우 싫어하게 됐지만.

자존심을 긁다 못해 치욕적인 방법으로 알려줬다.

"너! 1학년 진도부터 다시 풀어봐"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인데 1학년 꺼부터 다시 풀어보란다. 지금 와서 보면 얜 과외를 하던 교사를 하던 진짜 성공할 아이였다. 수학은 기초가 탄탄해야 했고 전 단계를 완벽히 이해해야 다음단계로 넘어간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나에게 그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물론 말투는 세상 재수 없는 말투였지만!


이런 설명 없이 치욕적으로 1학년 꺼부터 고분고분 풀었던 나는 어느 순간 막히기 시작했고 거기부터 다시 공부하게 됐다. 학년 말 너무 놀랍게도 수학경시대회에서 100점인가, 고득점을 맞게 됐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아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부터 난 수학을 꽤 잘하게 됐고 고등학교 미적분도 어렵지 않게 넘어갔다. 오히려 벡터 스칼라 같은 공간을 다루는 수학이 더 어려웠었다.



이실직고했지만 나도 논리수학 지능이 높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둘째 놈에게 수학을 잘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이 사실을 몰랐던 아내만 속았을 뿐.

둘째 놈의 수학은 내가 담당하며 아이를 찬찬히 살펴봤고, 내 국민학교 시절과 둘째놈의 수학실력은 별반 다른 건 없었다. 다행인 건 책 읽는 걸 좋아했고(물론 만화책을 더 좋아한다) 말도 잘하고 다른 아이들 배려하는 모습이 내 어릴 적 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였다.


"아빤... 이거 숫자 하나 그렸을 때 특급 칭찬을 받았거든! 근데 넌 나보다 훨씬 훌륭하구나!"

라며 특급 칭찬을 해줬다.

칭찬은 고래르 춤추게 했지. 나도 칭찬 좀 더 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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