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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테 Jul 10. 2024

유럽인들의 휴양지 크로아티아 풀라 #1

Valkane Beach에 뛰어들다.

크로아티아에 다녀왔다. 세 번째 방문이다. 이번에는 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풀라'라는 도시에 갔다.


10년 전 처음 크로아티아에 갔을 때, 유랑에서 만난 언니 오빠와 차를 렌트해 자그레브에서 두브로브니크로 여행하던 길에, 아마도 충동적으로 '로비니'라는 작은 도시에 들렸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다음 일정을 다 바꾸고 로비니에서 사흘을 묵었다. 그때 로비니에서 약 30km 떨어진 도시 풀라에 대해 처음 들었다. 유럽인들의 휴양지라고 했다.


올여름휴가를 어디로 갈까 정우와 얘기하면서, 베를린에서는 즐길 수 없는 것 -바다, 뜨거운 태양, 싱싱한 해산물- 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했다. 스카이스캐너를 열고 요리조리 비교해 보다가 풀라 공항으로 가는 직항 노선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바로 풀라에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여행지에 대해 미리 검색하고 여행을 준비하는 편이 아니다. 원래 뭘 꼼꼼히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랜드마크 도장 깨기'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사람들이 그 여행지에 대해 남긴 리뷰들을 일부러 잘 찾아보지 않는다. 하물며 햇볕 쬐고 수영하러 작은 도시로 가는 여행이기에 내가 유일하게 준비했던 건 비행기 티켓을 사고 나서부터 약 한 두 달 동안 고심해서 고른 수영복 두 벌이 전부였다.


오후 세 시쯤 풀라 공항에 도착했다. 세상에 그렇게 아담한 공항은 사이판 공항 이후 처음이었다! (아니, 아마 그리스 크레타섬의 헤라클리온 공항이 가장 작았던 것 같은데 그 공항은 내 머릿속에서 간이 터미널로 분류했기에 제외..) 비행기에서 내려 활주로 이동용 버스를 타고 30초. 건물 안에 들어서서 스무 발자국 걸으니 짐 찾는 컨베이어 벨트가 나왔다. 그리고 1분도 안 걸려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돌아갈 때 풀라에서 출발하는 항공 편들을 보니 대부분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연합 국가들로 가는 저가항공편들이었다. 아마 그래서 엄격한 출입국심사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마을버스 한 대가 있었다. 한 시간을 기다리면 온다고 했다. 그날 아침까지도 베를린은 너무 추워서 풀라에 도착하면 바닷가에 뛰어들거라 다짐했는데 그 작은 공항에서 한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우버를 불러 올드타운 근처의 숙소로 갔다.


숙소는 아담하고 깨끗했다. 여기저기 연보라색을 잔뜩 사용한 인테리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라벤더가 크로아티아의 특산물이라서 라벤더의 연보라색을 인테리어에 사용한 것 같았다. 만약 언젠가 풀라에 다시 가게 된다면 올드타운에 숙소를 잡지는 않을 것 같다. 올드타운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바다가 없는 데다가 대중교통 시스템이 매우 열악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고 싶었던 도시들이 올드타운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퍼져있어서 이번 휴가에는 올드타운에 머무는 게 나쁘지 않았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옷 안에 수영복을 챙겨 입고 구글맵으로 가장 가까운 바닷가를 검색했다. 버스를 타려면 또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한 시간 거리를 그냥 걸어서 갔다. 날이 더워서 현기증이 났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한 햇볕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Valkane Beach. 그래, 이게 내가 기대했던 아드리아해의 바다다!!!!!!!

Valkane Beach는 항구도 해수욕장도 아닌 형태의 해변이었다. 작은 만 가운데에 선착장 혹은 방파제의 용도로 만들어진 것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었다. 크로아티아의 많은 해변에는 자연적인 모래사장 대신 이런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구조물을 중심으로 양옆으로 쭉 타월을 깔고 누워 태닝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물속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곳에서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도 방파제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몸이 뜨거워지면 물속에 풍덩 뛰어들었다가 다시 햇볕에 누워 말리기를 몇 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햇볕과 공기와 바다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충분했다.



방파제 끝에서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다이빙을 하며 놀고 있었다. 여러 무리 중 한 남자아이들이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있었는데, 주인인 애가 바다에 뛰어들 때마다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거리며 눈으로 주인을 좇는 강아지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한참 놀다 보니 구름에 해가 가려 공기가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수돗물이 나오는 간이 샤워장이 있어서 간단히 몸을 씻어내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크로아티아에서의 첫 끼로 선택한 곳은 Valkane Beach에서 15분쯤 걸어가면 나오는 Rustic Gourmet Veruda라는 식당이었다. 해산물이 고팠던 우리는 생선요리와 구운 깔라마리, 그리고 하우스 화이트와인 1L를 주문했다. 워낙 와인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보통 와인 한 병을 훌쩍 넘는 양이 16유로밖에 하지 않아 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식과 함께 나온 '블리트바(Blitva)'라는 사이드 디쉬가 아주 맛있었다. 블리트바는 시금치와 감자를 올리브 오일, 마늘, 소금 등의 간단한 시즈닝과 함께 버무린 요리이다. 생선도 살이 많고 아주 맛있었는데, 오징어는 역시 튀김을 시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음식을 맛있게 다 먹고 나니 주위가 어둑해졌다. 아침에 베를린에서부터 긴 하루를 보낸지라 음식과 술을 배부르게 먹고 나니 노곤함이 몰려왔다. 해서 숙소로 돌아갈 때는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다행히 이번엔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버스는 한 번 탈 때 일인당 2유로. 72시간 동안 10유로에 무제한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티켓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마지막 날에서야 알았는데, 다행히 풀라에 머무는 동안 딱 다섯 번 정도 버스를 탔던 것 같다. 버스가 잘 오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여섯 번 이상 타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풀라에서의 하루가 끝났다.

집에 돌아와 다음날 일기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흐리다가 오후 네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만 잠깐 해가 비친다고 했다. 내일은 뭘 해야 할지, 흐리지만 바다를 가야 할지, 아니면 올드타운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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