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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현 Dec 26. 2022

먼지 뭉텅이

과학과 에세이

전철을 기다리는 역사 내였다. 저만치서 시커먼 먼지 덩어리 하나가 날아오더니 기어이 발에 치였다. 수많은 발걸음이 오가며 남긴 먼지였다. 발에 엉겨붙으려 하자 얼른 발을 떼어 걸음을 옮겨뒀다. 그러자 한 차례 더 불어온 늦바람을 타고 다른 이의 발치에 가더니, 또 한 번의 발길질로 퇴짜 맞고 만다. 비록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 순간 존재감 하나만큼은 확실하던 먼지 뭉치였다.

     

의식을 하고 나서야 보이는 존재가 있다. 먼지가 그랬다. 어디에나 흩어져있고 여기저기 다 퍼져있는데도, 너무나 왜소한 나머지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에나 들이마셨고, 지금 이 시점마저 코로 숱하게 들어왔을 테도 시야엔 일절 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구석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구석진 곳에서 덮개를 살짝 들춰보면 숨어있던 작은 토씨들은 그제야 드러난다. 뭉치고 나서야 보이던, 쓸고 나서야 시커먼 자국이 묻어나던 먼지였다.

     

의식을 해야 비로소 보이던 존재. 우리 개개인도 다를 게 있을까. 조금만 떨어져 바라보면, 바닥 근방에서 흩날리던 먼지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감은 별반 다를 바 없다. 그지없을 우주 속, 지대한 행성 안에서, 거대한 사회 틈새 보이지도 않을 일원으로 자리하는 한 명이다. 스케일의 차이일 뿐이다. 한데, 이러한 미력함은 먼지들과 공유하면서도, 뭉치려는 성질과는 차츰 멀어져 가는 듯하다. 잊히지 않기 위해서 엉키고 뭉쳤던 먼지 마냥, 모이고 뭉쳐야 그나마 티끌만큼의 존재감이라도 낼 텐데 말이다.

     

거대한 존재의 탄생은 되려 작은 점들에서 시작된다. 150억 년 전엔 모든 게 한 점이었고, 별 의미 없던 별 하나하나가 모여 의미 있는 별자리가 생겨난다. 커다란 행성들도 결국엔 조그만 입자들과 미미한 먼지들이 엉겨 붙어 탄생한 것들이다. 어둠을 떠돌던 수없이 많은 작은 원소들, 혼자선 보이지도 않았을 미립자들의 뭉침이다. 대단해 보이는 존재조차 혼자가 되면 별거 없다. 인광이 번쩍한 스타들 또한, 뒤를 봐주는 수많은 사람이 켜켜이 쌓은 결과물일 따름이다. 그건 혼자서 만들어낸 발광이 아니다.


뭐든 합을 이루면 증폭된다. 먼지 뭉치가 했던 것처럼 서로를 크게 키운다. 공명 현상이다. 조그만 발걸음이 모여 행진 소리를 만들듯, 미약한 목소리가 포개어져 함성으로 울리듯, 작은 현상은 끼리끼리 손을 잡으며 상호확대한다. 치어들은 무리 지어 거대한 성어를 압도한다. 작은 존재는 그렇게 존재감을 증폭한다. 유약한 생명들은 그런 식으로 불안한 생존력을 공명한다. 무리 속에 합일한 채로, 질겨지고 짙어져 간다. 풀 한 포기 뽑는 일은 가소로울지 모르나, 드넓게 엉기고 성긴 풀밭은 쉽게 헤쳐가기 힘들다. 하나가 아닌, '그들'의 존재감이 된 덕이다.


연대와 유대는 작디작던 몸집을 키우는 감각이다. 흩어지지 않기 위해선 손을 꼭 붙잡아야 한다. 힘이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을수록 깍지에 낀 힘을 더 쥐어야 하는 법이다. 뭉치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개미 한 마리는 무심코 밟힐지언정, 무리를 이룬 개미 떼는 함부로 밟아낼 수 없다. 까만 점은 바닥을 수북이 뒤덮으며 하얀 콘크리트의 색을 가려낸다. 뭉쳤을 때 그제야 드러나던 먼지 뭉텅이와 개미 떼처럼, 미소한 개개인의 생존법도 다를 바 없다.


내 것 하나 더 가져 보려 배척하다 먼지 한 톨이 되어버리는 세상이다. 조금 나누고 서로 도우면서 뭉쳐가는 존재가 결국 살아남는다. 보이지 못한 존재는 거대한 발 밑창에 밟히기 마련이니까, 혹여나 밟히지 않기 위해 끝없이 응집해야 하는 이유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겨울이다. 흩어지는 눈발 속에서도 눈뭉치를 밀도 있게 다져본 이는, 뭉쳐진 눈뭉치의 단단한 감촉을 분명 알고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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