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에 얼마만큼의 진실을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실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사실은 비로소 진실이 된다. 진실과 사실을 구분하는 것은 실은 별의미가 없다. 존재에 의해 소화되는 순간 사실은 진실이 되고 진실이 되어서야 사실은 사람을 움직인다.
딸과 딸이 여행하고 있다.
함께 여행하는 딸의 딸이 나다. 딸은 처음으로 미국에 왔다. 딸의 딸이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엄마, 외할머니, 또 다른 딸은 해안가의 시골 마을에서 아마도 평생을 사셨고 농부의 아내였다. 이 딸의 딸, 나의 엄마는 해안가의 시골 도시에서 대부분을 살았고 막내딸이고 녹록치 않은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버텨내었다.
나는 그 딸이다. 나는 그 다른 딸의 생의 고단함을 목격하며 늘 조금의 죄책감을 둘러메었다.
모든 딸들은 얼마간 잔인한가 보다. 딸과 딸이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는 딸과 딸은 타자이자 본인의 연장선이기에 쉽사리 분리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 결과 선을 쉽게 넘고 선을 쉽게 흐린다. 타자로서의 존중이 부재한다. 어떤 사람은 이들에게 타자로서의 분리는 살을 떼는 고통이라고 했다. 대학원을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하기 이틀 전 엄마는 한 밤에 짐을 채 못싼 내 캐리어를 현관으로 내어놓으며 아마도 그의 불안에서 기인 했을 날선 말들을 쏟았다. 묻어두어 잊고 있었던 이 기억이 여행을 하며 사소한 선들이 침범될 때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딸은 딸에게 좋은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리고 좋은 기억을 만들고 싶었다. 딸과 딸이 미국 곳곳을 돌아볼 때 딸은 다른 딸을 위해 제가 아는 좋은 것들을 계획했다. 다른 딸은 경탄하고 즐거워하며 동시에 낯설어하고 자기로 가득한 세상으로 후퇴한다. 소통은 어딘가에 멈추어 빙빙 돈다. 이해에 대한 갈증은 갈무리되어 아마도 사그라든다.
딸은 깨닫는다. 이제는 조금 편안히 날아도 되겠다고. 딸은 딸에서 떨어져나와 미국으로 왔다. 어쩌다, 어쩌다 미국으로 오게 된 것일 뿐이라며 스스로 과하게 과소평가해왔던 나의 여정을 이제는 스스로 알아줄 때가 되었다. 미국에서 정착한 또래의 한국인 친구들은 많은 경우 영어권 국가에 살아보았거나 가족이 같이 이민 온 경우 등이 많다. 대학 졸업반이 되어 난생처음 미국 땅을 밟아보고 서른 즈음에 정착을 하러 처음 나와 미국 의사 시험을 줄줄이 보고 미국인도 교포도 어려운 빡센 레지던트 인터뷰를 보고 대학 병원에서 무려 정신과 의사를 하고 있다. 어릴 적 미국 문화에 노출된 경험이 있어도 쉽지 않은 과정인데 먼저 정착한 가족도 친척도 없이, 조금의 익숙함도 동질적 문화 경험도 없이, 빡빡한 조기 교육도 없이, 글로벌과는 거리가 먼 로컬 그 자체의 동네에서 자라 모두가 로컬인 주변 속에서 이렇게 멀리 나와 나를 펼치고 이어가기가 얼마나 쉽지 않았을까. 대서양에서 발가벗고 수영을 하는 느낌이다. 그 용기는 얼마나 가상한가.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했던 것처럼, 내 어린 시절, 자연과 음식과 사람과의 연결은 내 독창성과 풍성한 내면세계의 뿌리이자 근원이다. 그와 동시에 내가 많은 간극을 넘어야했고 여전히 넘어야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가끔은 고단하다. 그러나 그래서 단단하게 바로 서 걸어간다.
p.s. 간극 같은 것은 이미 없는 지도 모른다. 나는 세대 간의 다리(bridge)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일 뿐일까. 자신을 다리로 착각하는 탓에 개인이 고통받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