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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네 Choi Sep 04. 2023

점으로 인생을 채워간 예술가, 인간 김환기

천재도 노력한다


올해 호암미술관에서 한국의 대표적 추상화가 김환기 전이 열렸습니다.


전시 제목은 <한 점 하늘 김환기, a dot a sky kim whanki>


사실 저는 잘 모르는 분이었는데 아내님의 도움으로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상당한 양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그림 자체도 좋았지만 평생 자신의 열정을 예술에 쏟아부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알게 되어 정말 좋았습니다.



김환기 화백의 초기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아래 사진은 그중 마음에 들었던 작품들입니다.





김환기 화백은 평생 고된 그림 그리기 작업을 하며 예술혼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그가 미국으로 가기 전인 1951년 즈음, 30대 청년 김환기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글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도 예술과 싸우는 것일까? 1951년 부산에서 살 때다. 생철지붕 밑 그것도 허리를 펼 수 없는 다락 속이었다. 이 다락 속에서 줄곧 일을 했었다. 삼복, 이 다락 속은 숨이 콱콱 막혔다. 한 번은 복중에 일을 하다 말고 내 정신상태를 의심해 보았다. 미쳤다면 몰라도 그 폭양이 직사하는 생철지붕 바로 밑에서, 그것도 허리마저 펼 수 없는 그런 다락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급한 부탁도 아니요, 들고 나가 한 됫박 쌀이나 소주 한 병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형편도 아니었다. 그저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달콤한 문학적인 것으로만 여겨왔던 예술과 싸운다는 말을 이 다락 속에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 <편편상> 중에서


고온의 실내,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훌륭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참 대단한 청년이었네요.





전시회장 중간쯤에 가서 벽면 전체에 걸린 대형 작품 <여인들과 항아리>는 참 따뜻한 이미지였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폴 고갱의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당시 죽음 앞에 있었던 고갱의 작품은 매우 어둡고 무겁습니다.


젊은 시절 김환기 화백의 그림에는 그 어디에도 죽음의 느낌은 나지 않습니다.

따뜻하고 든든한 어머니, 사랑스런 여인과 딸들이 보이는 듯합니다.  




예술 여정을 위해 미국에 간 김환기 화백은 점으로 자신의 세계를 채워나가기 시작합니다.

나이 예순에 가까울 무렵 완성한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머나먼 타지에서 점 하나하나를 하루 종일 캔버스에 찍어가며 매일을 보냈던 김 화백의 삶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환기 화백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시구로 제목을 삼았다고 합니다.


<하늘과 땅>


김환기 화백의 그림들 옆에는 당시 작업을 하면서 적어 두었던 메모 내용들이 함께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점들로 이루어진 저 거대한 추상화를 완성해 내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난한 시간들을 보냈는지 생각하면 아련하면서도 겸허한 마음이 듭니다.


제작자 사후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남긴 작품 옆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네요.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던 김환기 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한 고뇌가 담긴 작품이라고 합니다.

일평생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의 삶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마무리 단계에 왔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김환기 화백 개인 사료들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그중 딸들에게 수시로 보냈던 편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요즘처럼 페이스타임이나 카톡이 없던 그 시절의 애틋함이 묻어나는 글들입니다.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서 순간순간을 점으로 채워 넣었던 김환기 화백의 삶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낍니다. 주변의 누군가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나?'라고 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김환기 화백 자신의 내면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었겠지요.


앞서 얘기했던 고갱은 자신의 작품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죽기 전에 내게 남은 모든 힘과 극한상황에서 나오는 고통스런 열정을 모두 쏟아붓고 순수하고 티 없는 이상을 불어넣었"다고 말합니다.


김환기 화백의 삶을 고갱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둘 다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예술의 끝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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