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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만 May 01. 2024

함양의 황석산, 황석산성을 갔다 오다

우리는 강원도만 산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리산 근교지역도 산이 많다.

함양, 산청, 거창지역에 특히 산이 많다. 산이 많다 보니 함양은 약초의 함양이라고 한다. 함양에는 유명한 산이 많은데 그중에 하나인 황석산을 간다.


황석산에는 황석산성이 있다. 정유재란당시 이곳에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 지휘관이 이곳을 지키지 않고 도망쳐 패배한 전투였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 산성을 복원하여 후세에 이를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난파하는 선박에서 최후까지 남아야 하는 것이 선장인데 그 선장인 지휘관이 도망을 갔고 조정은 그것을 명확하게 처벌하지 않은 것이다. 황석산을 오르고 내려온 후 황석산성의 역사를 공부하면 문경새재를 버리고 탄금대에서 만용을 부린 신립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국가가 없어지면 자기도 없는데 살아보겠다고 한 것을 보면 옹졸하게 그지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랜만에 번개산행을 하였다. 근무지 근처에서 2시간이면 대부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토요일이면 전국의 산하를 찾는다. 그래도 전국의 산을 찾으면서 혼자서 가기보다는 같이 산행을 하는 것이 좋아서 번개산행에 동행을 찾았다. 번개산행 제안에 모두들 흔쾌히 호응애 주었다. 우리 일행은 3명이 되었다. 3명 모여서 산행을 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몰고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금산을 지나고 무주 입구를 들어서는데 안개다. 웬 안개 하였더니 무주가 고향인 분이 이것에 대하여 해석하기를 이웃한 용담댐 때문이라고 한다. 용담댐에서 흘러내려오는 금강줄기 때문에 아침안개가 있다고 하였다. 지역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다.

덕유산 휴게소까지 오르막의 계속이다. 해발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하여 확인하니 해발이 500m가 넘어서고 있다. 오르고 오르면서 덕유산 휴게소까지 오르는 것이다. 여름날 덕유산 휴게소는 그렇게 덥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여름에 고산지대를 찾아간다. 하지만, 멀리 있는 곳만 찾아가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도 고산지대가 있다.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이제는 내리막이다. 그렇게 서상 IC를 지나고 함양으로 간다. 그렇게 차량 통행량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국도임에도 편도 1차선 왕복 2차선이다. 국도 26호선이다. 3번 국도를 만나기 전까지 농월정, 거연정 등 남강변의 이름 있는 정자를 지난다. 그 정자들은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남강 주변에 있던 유명인들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즐겼던 곳이다.

먼저, 농월정은 선비문화의 산실인 경남 함양의 대표적인 누정이다. 농월정은 인조 때 도승지를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지은 누정이다. 오래 전의 농월정은 2003년 화재로 전소되었고, 지금은 새로 지은 누정이 그 자리에 대신 서 있다. 주위 풍광과 어우러지며 너럭바위 위에 자리한 농월정과 옛 선현들이 흥취에 겨워 새긴 암반의 각자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다음으로  거연정이다. 서하면 봉전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천의 암반 위에 건립되어 있는 1동의 건물로, 2005년 10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위 경관이 아름답고 흐르는 계곡물과 우거진 숲, 가설해 놓은 구름다리 등이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아름다운 곳으로 자연(自然)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한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산으로 가면서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으로만 즐기면서 갈 수 있는데 오늘은 그렇게 지나만 갔다. 산을 내려와서 지나갈 때 보니 경치가 좋았는데 사람들도 많고 돌아오기 급급하여 지나쳤다고 할 수 있다. 그 정자의 모습을 함양군청 홈페이지서 찾아서 인용해 본다.

농월정(출처:함양군청)            거연정 (출처:함양군청)

황석산을 오르는 길은 다양한데 유동마을에서 출발하는 등산로가 있고 우전마을에서 출발하는 등산로가 있는데 산불조심기간에는 유동마을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만 개방이 되어 있어 유동마을에서 출발하기로 하였다. 유동마을 마을회관 앞에 공터에 여러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우리 차도 다른 자동차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주차를 하고 황석산으로 간다. 연촌을 지나서 산으로 간다.

산으로 가면서 오늘 몇 명을 만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산을 오른다. 황석산을 오른다고 사전에 산행기를 보았을 때는 힘들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오른다. 산이 너무 좋다. 푹신푹신한 등산로가 육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다만, 조망이 없을 뿐이다. 능선을 오르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오르는데 능선이라고 오르면 아니다. 또 올라야 한다. 황석산이 산을 오르는 등산객에게 약을 올리는 것 같다.

쉼터가 있다. 한 번쯤 쉬어가라고 있는데 황석산 정상까지 1.6km다. 처음에 출발했을 때 4.0km였으니 많이 온 것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약간 등산로가 험악해진다. 등산로에 밧줄이 있고 바윗길이 있다. 그리고 올라서면 이제 조망이 터지는 능선에 도착한다. 앞을 보면 황석산 정상이 보이고 아래로 내려다보면 연초록의 물결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나는 이때 산행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소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이 연초록의 물결이 있는 곳에 그늘이 거의 없다. 황석산 정상의 보이지만 그 정상을 위하여 오르내린다.

정상 근처를 보니 지난겨울의 아픔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등산로를 위하여 산성을 부분적으로 개방해 놓을 곳을 지난다. 황석산성에 대하여 궁금하였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그곳을 지난다. 안내판이 있다. 황석산성은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에 설치된 산성으로 신라가 건축한 것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그리고 정유재란 때 사용되었다고 소개되어 있다. 정유재란 때 승전의 성이었다면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궁금하다. 신라땅이 어느 쪽이고 백제땅이 어느 쪽인지 궁금하다. 다만, 성곽이 우리가 올라온 곳을 향하여 방어 진 지가 구축되어 있는 것을 보아 유동마을은 백제땅이었을 것이었다.

성을 감상하는 것은 뒤로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정상은 데크로 올라갈 수 있도록 정리되어 있다. 산을 오르면서 산 정상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곤충에게 피신을 한 것이다. 날개미가 정상석 근처의 바위 위를 점령하고 있다. 그 날개미들이 날아다니니 오래 있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며칠 전 비가 와서 날개미들이 따뜻한 곳으로 모여든 것이다. 정상에서 남으로 북으로 능선을 눈을 돌려본다. 드론을 띄워서 이를 조망하는 분도 있다. 데크가 없을 때는  힘들게 한참을 걸려서 올라왔을 것이다. 그리고 북쪽으로 보니 거북바위가 있다. 정상에서 그곳을 당겨서 담아본다. 요즈음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너무 진화되어 있어 옛날  DLSR로 촬영하였던 부분을 스마트폰 카메라가 담당을 하고 있다.

 

석산의 북봉으로 이동을 한다. 북봉으로 가면서 거북바위가 있는 암릉을 거쳐서 지나가 본다. 거북바위를 올라가 보니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정상 쪽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거북모양이었는데 반대방향에서 보았을 고래모양이다. 모양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북봉을 지났다. 그런데 이곳을 지날 수가 없다. 이곳을 지나는 것은 위험하다고 우회를 권고한다. 국립공원이라면 이곳에 데크를 설치하여 넘어갈 수 있도록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태로 유지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위험한 지역은 회피하기에 우회로를 찾고 있다. 앞서 있던 등산객 3명이 올라와서 좀 더 좋은 길이 있었다는 기억을 갖고 등산로를 찾았는데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분의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이곳이 아닌 바로 전에 내려갈 수 있었던 곳이 이곳까지 오기 전에 있었던 곳이라고 생각한다. 등산지도를 보니 이곳이 아닌 바로 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회로를 이용하여 북봉을 우회하였다. 우리들보다 앞섰던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부분인 밧줄인 있는 부분이 있고 그곳을 지나면 어려움이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우회로를 지나면 편안한 등산길을 만나는 것이다. 이제 하산을 하여야 한다. 우리가 거망산까지 갈 것이 아닌 만큼 하산을 위한 하산지점을 찾아야 한다. 하산지점을 찾는 것은 이정표가 있으면 좋다고 할 수 있으나 없을 경우 등산객들이 나무에 등산로를 표시해 놓은 표지기를 이용한다. 하산로를 찾았다. 이곳이 뫼재였다. 이곳에 이정표를 만들어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정표는 없었으나 표지기가 있어서 이를 찾아 내려간다. 그런데 이곳을 지나면서 허들 경기를 하였다. 지난 경우 설해에 따라 나무들이 쓰러져서 등산로에 장애물을 설치한 것이다. 장애물 경기하듯이 장애물을 우회하거나 허들경기하듯이 넘어가 보기도 한다.

우리가 찾은 등산로는 그렇게 어렵게 내려가지 않는 등산로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하산로라고 할 수 있다. 하산을 하면서 푹신푹신한 등산로를 천천히 내려간다. 그리고 내려가면서 사찰 앞의 개울에서 산을 올라온 흔적을 지워본다. 사찰이름이 특이하다. 령암사다.

우리는 천천히 내려간다.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것인 만큼 어려움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늘이 없다. 일행들이 모자를 사용하였으나 그렇게 목을 보호하지 않아 목주변이 햇빛의 상흔이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유동마을로 이동을 한다. 이곳은 그래도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사과 과수원이 추가 조성이 되고 있다. 사과꽃이 한창이다. 그리고 유동마을에 도착하여 보니 마을 전체가 아담하다. 마을에서 자동차를 회수하여 돌아간다. 농월정, 거연정이 있지만 스치듯이 지나간다.

결론적으로 유동마을에서 출발하여 연촌을 거쳐 황석산성 황석산 정상 거북바위를  지나 북봉 입구에서 우회하여 묏재에서 하산하여 령암사 앞을 지나 탄현이란 곳에서 유동마을로 이동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황석산성은 신라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에 건설하였으며, 육십령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방어하기 위하여 건축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은 도로가 있지만, 현대식 도로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우리 조상들은 산을 넘어 다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대식 도로와 같이 산아래를 돌아 돌아가면 자동차 등이 있을 경우 빠르게 이동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그렇지 않을 경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요즈음도 산에서 걸을 때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산을 넘어갈 때보다 2배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되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역에 산을 넘어서 이동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을 한다. 그 이동하는 경로 산성을 쌓고 지켰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정유재란 당시 진주성을 공격하고 이긴 일본군은 호남지방으로 진출하기 위하여 이곳을 공격하였다고 전해진다. 함양, 산청, 김해 등의 관군과 의병이 이곳에 집결하여 4만 명 이상의 일본군을 막아냈지만 많은 희생자를 내고 함락되었다고 한다. 당시 관군과 의병이 행주산성 전투와 같이 일심동체로 싸우면서 막아내고 있었으나 백사림이라는 김해부사가 자기 목숨이 아까워 도망가면서 성문을 열어 패전하였다고 문화재청에서 발간하는 황석산성이야기가 전하다. 이와 대비되는 피바위의 이야기도 있다. 피바위 근처에서 의병으로 활동하는 남편을 따라왔던 부인이 남편이 전사하자 부인도 부엌칼들을 이용하여 싸웠으며 주변에 있던 다른 부녀자들도 낫, 몽둥이 죽창등으로 적에게 맞섰으며, 중과부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옥녀라는 부인이 적에게 잡혀 치욕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서편 성벽으로 달려가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다른 부인들도 벼랑으로 몸을 던져 바위가 붉게 물드었다고 한다. 이렇게 피로 물든 바위를 후세 사람들이 "피바위"라고 불렀다고 한다. 피바위와 도망친 김해부사의 이야기는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할 것이다.

 

출처 : 함양군민신문(피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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