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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Oct 20. 2020

"이게 진짜 이름이에요?" 上

나는 특이한 이름으로 개명했다


내 이름은 오늘이다.

성이 '오', 이름이 '늘'이다. 친구들은 나를 "늘아~"하 부른다.

내년 2월이면 이 이름으로 산 지 3년이 된다.


개명 전 이름은 오예은. 무난하고 예쁜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내 이름에 그다지 애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연년생 세 자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연스럽게 언니들과 같은 '예'자 돌림 이름을 갖게 됐다. 종종 이름예쁘다는 말을 들었지만, 크게 가슴에 닿지 않았다. 한창 사춘기였을 때는 초성이 'ㅇㅇㅇ'인 것도 별로라며 괜히 툴툴거렸고 '결국 언니들 이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게 무난하게 지은 이름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한 내 옛 이름에는 종교적 의미가 내포돼 있는데, 이 점도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이 글을 읽는 '예은'님들, 저의 취향이 아닐 뿐 좋은 이름입니다)


과거에는 개명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지만, 오늘날 개명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5년 11월, 대법원이 "개명을 엄격하게 제한할 경우 헌법상의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개명을 개인의 자기 결정권 영역으로 인정한 이후로 누구나 쉽게 개명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개명 관련 정보를 찾아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 내 이름, 평생 불리게 될 내 이름은 그 누구도 아닌 내 맘에 들어야 한다.






언젠가는 개명을 하겠다는 마음을 고등학생 때 굳히고 '이게 충족되면 개명을 하자'며 스스로 정한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성인이 된 후에 개명할 것

성인 개명은 미성년자 개명보다 좀 더 까다롭다. 명을 허가할 땐 개인의 의사뿐만 아니라 공공적인 측면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성인은 미성년자보다 사회적, 법률적 관계가 형성된 기간이 길기에 심사 시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것을 더 고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을 생각해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둘째, 경제적으로 독립한 후에 개명할 것

내가 개명한다고 하면 부모님이 속상해하실 게 뻔했다(하지만 나에게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부모님 지원은 받을 대로 다 받으면서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일을 고집하는 건 너무 철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필수 조건으로 정했다.



2017년 말,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가던 때에 드디어 계획을 실행할 수 있게 됐다.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해 등록금은 원래부터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있었고, 당시에 산업체에서 시급이 센 국가근로 장학생으로 일을 하며 자취방 세와 생활비도 내가 직접 벌고 있었다. (1)성인이 된 이후 (2)경제적 독립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게 된 나는 법무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개명할 이름은 전부터 생각해둔 게 있었다.

최종 후보는 두 개였다. '오은'과 '오늘'


전자는 원래 이름에서 가운데 '예'자만 뺀 이름이다. 개명한 후 남들도 나도 크게 어색함이 없을 것 같은 이름이자 부모님을 의식한 이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후자는 '저게 내 이름이 된다면'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던 이름이었다. 한글을 좋아하는 나는 한글 이름이 갖고 싶었다. 기왕 개명하는 거 디자이너로서 특별한 이름으로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싶은 맘도 있었다. 그러다 생각하게 된 것이 '늘'이라는 이름이었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 나는 후자를 선택했고 오늘날 후회는 전혀 없다.


첫 개명은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이름이 특이한 걸 알았기에 보다 안전하게 법무사를 통해 접수하기로 했다. 개명 대행 법무사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비용도 다 비슷비슷했기에 어렵지 않게 한 곳을 골라 첫 번째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첫 번째 법무사는 내 의뢰를 거절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이가 어리신 것 같은데
어릴 때 충동적으로 특이한 이름으로 개명했다가
다시 원래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경우가 있어서요.



해당 법무사무소에서 맡은 사건 중 비슷한 사례가 있으니 이런 말을 했겠지만, 어린 사람의 충동으로 치부한 것에 맘이 상했다. 나는 괜히 쭈그러든 채 다른 곳을 알아보았고 다행히 두 번째 법무사무소에서는 전혀 문제없다며 개명신청 의뢰를 받아주었다. 나는 전화 통화로 개명하고 싶은 이유를 설명했고 법무사 서류를 작성한 뒤 법원에 제출까지 대신해주었다. 대행 비용은 15만 원이었다.






부모님께는 신청 직전에 "개명을 하겠다"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이 반대하시더라도 할 거였으니 사실상 통보였다. 부모님은 대로 반응하셨고, '고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개명할 것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느냐'는 나의 말에 가볍게 지나가는 생각인 줄 알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모님의 반대에 맘이 편하진 않았지만 나를 먼저 생각하자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진행했다.


개명 신청서를 접수한 뒤에는 계속 기다렸다. 개명 서류심사 기간은 성인의 경우 약 2~4개월이 소요된다. 개명 후에 해결해야 하는 것들을 리스트로 정리하 시간을 보냈다.


2017년 11월 말에 가정법원에 접수했고 2018년 2월 초에 개명 허가가 났다. 약 두 달이 걸린 셈이다. 이후엔 설레는 마음으로 개명신고를 하고 부지런히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이름을 정정했다.


사실 아직도 옛날 이름으로 연락 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마다 범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이름은 참 오랫동안 남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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