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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Dec 24. 2020

"이게 진짜 이름이에요?" 下

나는 특이한 이름으로 개명했다


"와... 이름이."

"네? 오늘이요?"

"어머! 너무 예뻐요"

"인증 가능?"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살다 보면 심심찮게 재밌는 일화들이 생기곤 한다.


글 제목으로 붙인 "이게 진짜 이름이에요?"는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다만 그 뉘앙스는 사람마다 다르다. 감탄하는 어조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장난치지 말라는 듯한 반응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은 당근마켓에서 나름 고가의 거래를 한 적이 있다. 내가 판매자였는데, 직거래가 아닌 택배 거래였기에 상대는 혹시라도 사기는 아닐지 신중하게 판단하고 있었고, 나는 사기꾼으로 보일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몇 차례 채팅을 주고받은 끝에 계좌번호를 던질 시점이 왔다. 문득 과거에 거래하던 상대가 "그런데 이건 사업용 계좌(*부기명 계좌)예요?"라고 물어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어 구매자에게 [제 이름이 조금 특이해요. '오늘'인데, 본명입니다.]라고 운을 떼며 계좌와 예금주명을 알려주었더니 [진짜요? 인증 가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재빠르게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꺼내 사진을 찍어 인증해주고 나서야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는 늘 이름을 두어 번 반복해서 알려줘야 하고, 그게 진짜 이름이냐며 의문을 갖는 상대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을 이름이 특이해서 생기는 단점이라 하기에는 애매하다. 나는 상대방의 반응이 기대될 때가 더 많으니까.


정해진 멘트만 하는 줄 알았던 고객센터 직원분들이

수화기 너머로 이름 칭찬을 해주실 때.


신분증을 제시했더니 "(이름이 한 번에 외워져서) 나쁜 짓 하면 안 되겠다."라는

신선한 반응을 하는 은행원님을 만났을 때.


"이름이?"묻는 세탁소 아저씨께 "오늘이요" 하니

주섬주섬 세탁물을 찾으시며 "이름이… 예뻐요~"라는 정다운 말을 건네주실 때.


오랜만에 뵌 교수님이 내 이름의 인상만 기억하고 계셨는지

"이름이 뭐였죠? 노을이었나?"라고 하셨을 때. (각 글자의 자음만 서로 바꾸면 되니 나름 잘 맞추신 것 같다)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내 이름은 내가 만든 것이기에 이런 삶의 작은 순간들이 참 의미 깊고 소중하다.




이런 재밌는 화면도 만날 수 있다_리브메이트






개명한 뒤 가족들에게는 옛날 이름으로 불러도 된다고 했다. 작은언니가 너무 다행이라고, 어색해서 너를 '동생아'라고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고 말한 게 너무 웃겼다. 지금도 집에서는 예은이로 더 많이 불리지만, 이제 엄마는 늘아~하고 불러주신다. 이름을 바꾼 지 1년쯤 됐을 때부터 그러셨던 것 같다. 분명 속상하셨을 텐데 내 선택을 존중해주심에 감사하다.



정말 기쁜 점은 개명하고 나서 '전 이름이 더 낫다'라거나, '굳이 왜 개명했냐'는 듯한 말을 한 번도 듣지 않은 것이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모두 디자인 전공이어서 주변인 대부분이 개방적인 성향이라 그랬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예상치 못한 작은 소동이 있었다. 한 글자의 성과 두 글자의 명으로 20년을 넘게 살아온 나에게 성과 이름을 붙여 부르는 행위는 (공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너무 정 없게 느껴졌다. 그런데 개명하고 나니 주변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오늘아"하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괜한 서운함에 친한 친구들에게는 성 떼고 불러 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여전히 늘아, 하고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하지만, 이제는 나를 오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 부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 같아도 성이 '사'고 이름이 '랑'인 사람이 있다면 "사랑아~" 하고 부르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에는 처음 만났을 때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불러요?"라거나, "뭐라고 불러드리면 되나요?"라고 물어봐 주는 다정한 사람들이 꽤 많더라.


오늘이보다 늘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하는 것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개명할 때 [오늘]보다는 [늘]이라는 단어에 더 의미를 두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이라는 단어의 뜻은 계속하여 언제나라고 한다. 계속하여 언제나, 어떤 경우든 한결같이, 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어느 때든⋯. 나는 이런 뜻을 품은 이 단어가 그냥 좋았다. 정말 너무 좋았다. 이제까지 내가 추구하며 살아온 삶의 모습을 축약한 단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늘, 한결같이 살고 싶었고 한결같은 사람이 되길 바랐다. 이런 마음을 이름에 담아내고 싶었다.

나의 개명에는 나만의 조용한 다짐이 함께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가볍게 타박하는 투로 "아 오예은!"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나를 지칭하는 그 석 자가 너무 낯설어서 순간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빵 터졌다. 진짜 어색하다고. 얼마 만에 듣는 이름인지 모르겠다고.

이날의 기억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꽤 감격스러웠던 것도 같다. 내가 지은 이름이 이제는 나에게 잘 스며들었구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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