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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선 Apr 01. 2024

돈타령 하고 얻은 것

돈돈 모든 게 돈 세상

참으로 돈돈돈 하는 시대다.


회사가 우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거듭 강조되고, 그와 더불어 근로소득의 미약함을 부각하는 시대. 불변의 재테크인 부동산과 주식에 이어 실시간으로 코인의 등락을 보고하는 사회. 어느 시대나 돈과 자산은 중요했지만, 정보를 차단할 수 없는 지금 시대 속에서의 돈은 기회라는 단어로 초조함을 더욱 부추기는 사회 같았다. 참으로 피곤하고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 또한 여기에 집안사정이란 게 겹치면서 참으로 부지런히, 그리고 초조하게 돈을 좇았던 몇 해였다. 돈에서 비롯된 불행을 갚으려고 부단히도 쫓았건만 애석하게도 돈은 좇는다고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쫓을수록 멀어졌다. '남들은 잘하는데 왜 나만 안될까?'라는 생각에, 그리고 커져가는 돈에 대한 욕망 때문에 몸도 마음도 궁핍해져 갔다. 남과 비교해 안정되지 못하는 마음은 감정 조절 기능을 고장 내는 듯했다. 예민해지고, 짜증이 늘고, 갑자기 눈물이 나고. 소위 말하는 기분이 태도가 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몸에서도 역시 그만 '돈돈돈' 하라는 듯 염증을 이곳저곳 뿜어냈다. 나는 염증 누수를 막기 위해 부위별 병원을 주차별로 방문해야 했다.


돈을 1순위로 둔 삶의 가장 큰 문제는 다른 가치들을 하찮게 만드는 데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욕구가 들면 그런 생각이 든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아, 내가 아직 이런 여유를 누리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사고가 흐르고, 책과 글 앞에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라는 회의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좋아하는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취미로 했던 것들이 그저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빼앗아가는 어떤 향락에 불과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자, 보고 싶다는 연락을 주는 주변 지인들이 고마웠지만 일정을 잡는 것 역시 망설여졌다. 그 시간을 돈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람 좋아 인간의 오랜 관성이 그렇듯 막상 만나면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으레 오늘 즐거워한 내 모습에 현타가 왔다. 스스로가 유혹을 이기지 못한 나약한 인간 같았다.


돈에 눈이 먼 시야를 교정해 준 건 의외의 곳에 있었다. 나는 종종 불확실한 미래에 눈앞이 캄캄해지면 그 불안감을 사주나 타로 등에 돈을 지불해 달래곤 했다. 삶이 점지된 미래라는 전제만 믿으면 그들의 말은 현재를 달래는 충분한 안정제 역할을 했다. 훗날 그때 그 예언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해주는 이의 말을 믿고 그 희망으로 며칠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의의가 있고, 삶의 의지를 다시금 솟게 하는 역할이면 충분했다.


돈미새가 된 나에게는 '커진 욕망의 그릇을 다 채울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궁금증이 있었다. 이걸 채울 수 있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죽을힘을 다해 달려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 제 상황이 이러이러한데, 저는 언제쯤 돈을 이만치 벌 수 있을까요?" 미래의 답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예선 님, 예선 님은 돈을 좇으면 안 돼요."


그녀는 그 뒤로 건강과 타고난 나의 성향 등등의 이유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저 큐피드 화살에 팍 맞은 듯 나는 그 말에 꽂혀 "맞아요. 맞아"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그만두어야 하는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음에도 죄책감으로 압박하고 나약함으로 채찍질하면서 돈에 대한 순위를 지키고 있었다.


작은 화면 너머로 누구나 쉽게 돈을 벌 수 있다, 주식, 부동산, 코인 투자 어렵지 않다는 말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하고, 그게 내 눈앞에 쉽게 보여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나와 가족은 제외대상인 것 마냥 굴러가는 상황에 이 녀석에 대한 집착과 미련이 더 강해졌다. 한번쯤은 돈 걱정 없는, 돈으로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고싶어서 올려둔 가치가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그만두기엔 또 다시 포기해버리는 내가, 그렇게 원하면서도 이뤄내지 못하는 패배자처럼 느껴져 마음 깊숙한 곳 어딘가에선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돼'라는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다.


멀었던 시야를 되찾고 '돈을 많이 벌면 그때 해야지, 그때 모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사고를 다시 교정해 봤다. ‘힘들면 놓아도 돼’ 그렇게 스스로를 살살 달래면서 머리를 묶고 살이 쪄 조금은 꽉 끼는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에 갔다. 오래간만에 쇠질을 하니 느껴지는 육체적 고통이 그 어느 때보다 힘들다. 그래도 땀이 한 김 식고나니 개운하다. 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에 '왜 이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려했던 걸까' 의문이 들었다. 정신에도 생기가 돌았다. 몸과 마음에 고름처럼 묶어있던 노폐물이 빠져나간 기분엔 한결 가벼움이 느껴졌다.


집에 와서는 브런치를 켰다. 여기도 미루고 미뤄 먼지 쌓인 네 편의 글들만 휑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빈 공백에 한 편의 글을 구상하기보다 머릿속에 쌓였던 것들을 두서없이 뱉어내고 싶었다. 가치라고 분류되는 것들을 몇 개 적어보았다. 돈, 명예, 건강, 행복, 사람, 성취 각 분야 별로 생각나는 것들을 또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다.


쭉 적고 나니 감정적으로 그렇게 데었는데도 돈이란 역시 쉽게 놓아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자본주의에서 돈을 좇지 않는 삶은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그 무수히 많은 부자들이 왜 이걸 쫓지 말라고 했는지 알량한 근로자가 돈을 좇으니 알게 됐다. 이 녀석은 두 눈을 멀게 한다. 심하게 멀리.


운동을 갔다 와서 개운하지만 여전히 운동을 갔다는 조금의 죄책감은 남아있고, 오래간만에 글을 쓰는 시간이 좋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을 이겨내고 있다. 사람은 숨을 쉰다고 사는 게 아니라, 각자만의 숨통이 틔면서 사는 것 같다. 조여왔던 숨통을 조금씩 자주 넓힐 수 있게 이 시간을 다독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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