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명한 Nov 24. 2021

죗값은 후불

그는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을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방송 막바지에 그가 쓴 편지가 나왔다.

"저는 그저 이곳에서 조용히 속죄하며 남은 생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살인범이었다.

청송의 겨울 공기는 맑고 무거웠다. 교도소 입구를 들어서며 십칠 년 전 그가 체포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의 알록달록한 반팔 티셔츠, 거친 눈빛, 길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신문 일면을 오르내렸다. 그의 이름을 말하고 시끌벅적한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입장하세요. 5호실입니다.


그와 나 사이에는 아크릴 판이 있었다. 그 위에 동그랗게 뚫린 구멍은 손가락 하나를 겨우 집어넣어 볼 만큼 작았다. 작은 구멍 건너편에 앉은 그는 세월을 현로하듯 휑한 머리숱에 칙칙한 수형복 차림이었다.


그에게 근황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에서 심리학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알고 보니 제가 반사회적 성격 장애의 전형이더라고요." 동행한 형사팀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여가 심리학 박사다!"라고 답했다. 그는 나를 보고 "반사회적 성격 장애에 인지행동치료가 효과 있다고 하는데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습니까.” 라며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순간 아크릴 판의 작은 구멍으로 눅진한 공기가 훅 밀려들어왔다. 그는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치료의 욕구가 있다니. 다시 범죄를 저지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그에게 어떤 치료도 쓸모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용해 보이지만, 치료는 그가 선택한 속죄의 방식이 아닐까. 그의 눈에 불타던 분노가 깊은 회한으로 사그라든 뒤에야 결심했을 것이다. 시간을 돌이킬 수 없다면 남은 생이라도.


죗값은 후불이다. 검거 직후의 피의자를 면담하고 나면 몇 달 뒤 뉴스나 판결문을 검색해 그의 죗값이 어떤 숫자로 환산되었는지 확인한다. 십오 년, 십팔 년, 무기... 너무 짧은가, 너무 긴가, 그 세월을 비싸게 치러내야 할 텐데. 죄와 책임을 저울에 달아볼 때면 5호실의 눅진한 공기에 휩싸인다.


그의 바람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여생을 속죄하기를, 그리고 그것이 피해자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파일러 입직기 (번외) 법심리학 추천 도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