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봐?"
집에 가서까지 회사 이야기를 봐야겠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이미 책을 읽었기 때문에 드라마까지는 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시중에 범죄심리나 프로파일링과 관련된 책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라 다 읽을 수는 없지만, 현직 선배들의 책만큼은 모두 사서 읽고 공부해 두니까. 얼마 전 광역범죄분석 회의를 하며 선배들에게 수줍게 사인을 받기도 했다. (성덕이지요 하하)
SNS에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 대한 호평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궁금증이 생겨 드라마를 시작했다가 정주행 하고야 말았다. 지금은 9회를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의학 드라마 보는 의사는 없다지만, 나는 모든 경찰물을 섭렵하는 경찰이다. (덕업일치지요 하하)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서울 서남부 인근에 살았고. 우리 동네 또한 "빨간 옷을 입은 여자를 노린다"는 괴담에 시달렸고, 나는 밤늦게 귀가하는 엄마에게 빨간 옷을 입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프로파일러의 꿈을 가지게 됐다.
모두가 아는 그 사건들. 그렇지만 알려져 있지 않았던 범죄분석관의 노력들.
그동안 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는 '천재'지만 '괴짜'인, '특출 난 능력을 가진', '일반 경찰과는 다른' 존재로 묘사되어 왔다.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실재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오해를 감내해야 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 드라마는 '악의 마음'이 아니라 '읽는 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주었다.
이 드라마에서는 형사가 분석팀에 반발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기존의 드라마에는 프로파일러가 일방적으로 형사들을 무시하는 모습이 그려졌지만, 현실은 이렇다. 바쁜 형사팀은 그들의 경험상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방식대로 수사를 진행하게 마련이다. 이는 많은 사건에 잘 들어맞지만 프로파일러가 투입될 정도의 이상범죄에는 기존과 다른 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경험에 단단히 근거한 형사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네가 직접 수사를 해봤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겠지. 그 경험과 노력을 십분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분석 보고서를 써야 한다. 근거는 타당해야 하고 결과는 수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 직관에 의존하지 않는다.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분석을 해야 한다. 확신이 없는 보고서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라고 읽히게 마련이다. 한 번 분석을 잘 해내면, 그 형사는 다시 분석팀을 찾는다.
그래서 선배들을 존경한다. 이 드라마는 권 선배가 0에서 1을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도 무수한 노력과 훌륭한 분석 결과로 인정받은 선배들 이야기는 언제 봐도 멋지다. 그리고 그들이 덤덤하게 삼킨 두려움과 부담감을 함께 느낀다.
아직 드라마는 완결되지 않았지만 나는 우리의 역사를 안다. 권 선배는 프로파일러를 양성했고, 선배 프로파일러들은 1을 10으로 키워냈고, 그 동네에서 자란 여고생은 결국 프로파일러가 되어 11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산다. 드라마가 끝난대도 우리는 항상 진행 중.
9회가 끝났다. 에필로그의 대화.
"범죄자를 대면하면 악은 태어나는 거라고 믿고 싶어져. 만약 그게 만들어지는 거면 너무 절망적이잖아."
"어떻게 태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매 순간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구도 언제라도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전제가 중요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