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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드러머 Jun 22. 2022

아무것도 가진 거 없는 이에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김광석은 <나의 노래>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를 이렇게 애매하게 위로했다. 아무것도 없는 자에게 시와 노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살기 힘들다는 의미일까?


물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질로부터 초연해지기도 힘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더 많은 것을 가질 때 행복을 느낀다. 가지지 못하거나 가진 것을 잃을 때 불행을 느낀다. 


최근 1-2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몇 %만 올라도 난리인데 무려 2배 이상 올랐다. 집을 가지지 못한 우리를 세상 사람들은 '벼락거지'라며 조롱했다. 빛을 내 막차라도 탄 '영끌'족이 부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러워할 새도 없었다.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값 급등 소식에 잠을 설쳤다. 쫓겨나는 건 아닌가. 다행히 2년을 더 버티게 됐지만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앞으로 2년 후는 또 어떻게  버틸지 걱정됐다. 이러다가 서울 밖으로 나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평생 집 한번 가져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코로나로 인해 무려 1400대로 떨어진 주가는 단숨에 2000선을 회복하더니 2500대를 지나 3000을 돌파해 버렸다. 3300을 넘어버리자 모두들 4000을 넘을 거라 했고 모 대통령 후보는 5000까지 장담했다. 그 사이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코인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그 막차에 나도 타고 싶어 코인 관련 책을 보고 공부도 해봤다. 작년 말 비트코인이 8천만 원을 넘어섰을 때 곧 1억 원이 될 거라는 말이 돌았다. 실제 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역시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심한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친구들에게 자조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부터다. 집도 없고 주식도 없고 코인도 없다고. 물론 손바닥만 한 땅도 없다. 얼마 전엔 차까지 팔았다. 집, 주식, 코인, 땅, 차 모두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김광석의 노래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가 됐다. 시와 노래는 애달프기만 하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를 올리면서 모든 자산이 하락하고 있다. 코스피는 어느덧 2400선이 무너졌다. 불과 며칠 만에 수 백 포인트가 빠져나갔다. 최고점 대비 무려 900포인트나 빠져나간 것이다. 문제는 이게 시작이라는 점이다. 얼마나 더 빠질지 예상조차 할 수가 없다. 코인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8000만 원대를 넘긴 비트코인은 지금은 2000만 원 대다.  언론에서는 '기록적 궤멸'이라는 표현을 썼다. 끝 모르게 오른 아파트 가격도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분양 시장은 얼어붙었다. 강남불패의 신화가 깨지기 시작했다고 성급하게 얘기하는 언론사도 있다. 기름값도 최고점을 뚫어버렸다. 


자산이 모두 하락하면서 모두들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말한다. 역시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 이번엔 박탈감보다는 약간의 희망을 느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시와 노래는 희망으로 들린다. 재작년 청약 시장이 뜨거웠을 때 청약에 떨어진 게 다행으로 느껴지고 천정부지로 치쏟는 기름값에도 차가 없어 아무 걱정이 없다.


얼마나 떨어질지, 이러다 곧 반등할지 예상할 수 없다. 내심 조금 더 떨어지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경제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떨어지는 것도 위험하다. 하여간 지금의 내리막은 최근 몇 년 간의 오르막 때 느꼈던 불행을 조금 상쇄해줬다. 이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의 작은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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