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서 엄마로의 모습으로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산후우울증이 심하게 왔다. 나이도 젊고,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은 데 오로지 아이만 보고 있으려니 답답했다. 육아에 '육'자도 모르는 난생처음 겪는 육아는 매 순간 난감하고 그저 울고만 싶었다. 육아에 대한 부족한 자신감은 블로그에 다른 엄마들이 추천하는 방법으로 채우기 바빴다. 그렇게 해서 산 물건들은 나와 아이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쌓아 두고만 있었다. 청소를 한다고 해도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는 과정일 뿐. 실제로는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집안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물건을 버리지 않고 정리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수납장도 많아지게 되었다. 넓은 거실 창이 있었지만 높은 수납장들 때문에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낮에도 불을 켜야만 하는 어두운 집이 되어버렸다. 물건을 버릴 생각은 못했다. 그저 수납장을 꾸역꾸역 늘려가면서 물건들을 모셔두고 살았다. 미적 감각도 전혀 없고 잘 꾸미지도 못하면서 많은 시도를 했다. 그중에 최악은 친척이 주고 간 포인트 벽지를 방마다 바른 것이었다. 맙소사! 가지각색으로 요란하게 발라진 방은 더 어수선해졌다. 그런 집은 우울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만 벗어나면 우울증이 나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새롭게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장을 다녔다. 아이도 어린이집에 맡겼다. 그렇지만, 시간은 더 없고 신경 쓸 것은 더 많아졌다. 집에 있을 때는 대충 입었는데 직장을 다니게 되니까 옷을 신경 써서 입어야 했다. 몸 관리가 엉망인 탓에 맞는 옷도 없어서 새로 사야 했다. 가격에 맞춰 대충 사 입다 보니 분명 옷을 샀는데도 옷장을 열면 입을 옷이 없었다. 밤새도록 맘에 드는 옷을 찾아 비교하고 최저가로 샀다. 막상 받아보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싼 맛에 입다가 다시 사기를 반복했다. 옷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을 살 때도 이런 식이어서 돈은 돈대로 쓰고 늘 만족도는 떨어졌다. 쌓여만 가는 옷들과 물건들을 보면서 한숨만 푹푹 내쉴 뿐, 그래도 버리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체력이 떨어지니까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사소한 실수에 소리 지르기 일 수였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시간이 적어지는 게 미안해서 장난감이나 외식으로 채우려고 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아닌 돈으로 때운 것들은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러려고 돈을 벌고 직장을 다닌 게 아닌데 말이다. 아이를 잘 키우지도, 돈을 잘 모으지도, 그렇다고 집안 살림을 잘하지도 못하는 내가 싫었다. 모든 걸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다. 도대체는 나는 무엇을 위해 이런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곤히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자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나는 일 끝나고 돌아오면 편안하게 쉬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치워야 할 집안일이 너무 많았다. 한숨을 돌릴 시간조차 없는 삶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치워도 구질구질한 집이 너무 싫었다.
‘우리 집에 왜 이렇게 물건이 많은 거지? 지긋지긋해. 싹 다 버려 버리자!’
마음먹은 순간 바로 나는 버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쓰레기부터 버렸다. 그다음은 현재 나에게 맞지 않는 것, 지금 당장 안 쓰는 것들을 비웠다.
한 공간씩 비워질 때마다 내 마음속도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버려지는 물건 속에서 숨기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완벽주의 성격때문에 물건을 쌓고 살았던 거였다. 부족한 부분을 가리고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서 물건을 사들이고 또 사들이고,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물건은 나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물건들을 비워내자 마음도 정리되고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실행력이 생겼다. 나는 곧장 미루고 미뤘던 얼룩덜룩한 벽지를 걷어내고 새롭게 도배를 했다. 깔끔해진 방들과 간소해진 가구들, 그리고 여백의 공간들은 나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지긋지긋하게만 느껴졌던 집안일도 엄청 줄어들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정리정돈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물건이 너무 많은 게 문제였던 것이다. 나 혼자만 치우는 것 같아서 항상 억울했는데 그게 아니라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쓰는 물건은 대화를 통해 자리를 정했다. 쓰고 난 다음엔 꼭 제자리에 놓기를 했다. 덕분에 물건 찾는 일이 줄어들었다. 많다고 느껴졌던 집안일도 아이들과 함께 놀이처럼 하게 되었다. 이제는 일을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쉴 수 있는 집으로 변해 있어 행복하다.
지금 우울하고 좌절감에 놓여있는 상태라면 미니멀 라이프를 권하고 싶다. 나처럼 감당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힘들고 지친 몸과 마음이 쉬어야 하는 데 쉴 수 없어서 마냥 포기만 하고 싶은 상태라면 비우기 좋은 타임이다. 비움을 통해 마음도 정리되고 우울함도 떨쳐낼 수 있다. 앞으로 내딛을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집은 몸이 쉬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쉬는 곳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방 한 곳을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분명 그 이상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