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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비또바 Jun 29. 2021

진리를 찾아서 (中)

호기심에 사이비 신도 따라가 본 이야기

 ‘진리’의 사전적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가뜩이나 한 치 앞도 모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리가 가진 절대 보편성이란. 그들은 그런 ‘진리’를 앞세워 내게 다가왔다.


 건축학도 그는 자신이 데려온 친구를 소개하며 마침 근처라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어제 친구를 데리고 와도 되겠냐고 물어본  뭔가 싶다. 당일 뻔뻔하게 데려왔다고 하기는 아직 서툰 초짜였던  같다. 혹은 아마 비슷한 여러 번의 경험과 헷갈렸거나. 이때는 이미 이들이 사이비  쌍인  눈치챈 후였다. 그런데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는가. 무서워서? 그냥 가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가장  이유는 앞서 말한 '호기심'었다. 그들이 어떤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할지 궁금했으니까.


 그렇게 카페에서 우리는 ‘진리’에 관한 탐구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먼저 주문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과 허니브레드 하나. 계산대 앞에서 그가 쭈뼛대는 동안 내가 먼저 계산을 한 건 내 나름의 철칙 때문이다. 마음에 없는 상대에게는 얻어먹지 말 것. 사탕 한 알이라도 얻어먹으면 빚진 마음이 들고, 빚진 마음은 뜻에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이들에게 그런 빈틈을 보였다간 정말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은 고맙다고 말하더니 허니브레드를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게 눈 감추듯 빠르게 먹어치웠다.


 본격적인 진리 탐구의 시간. "진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도 몰랐을 땐 엉망으로 살았는데 제사를 드리고 영이 맑아졌어요. 공덕을 드리면 조상님이 다 알아주시거든요." 대화는 주로 그가 데려온 낯선 친구를 통해 이어졌고 지하철까지 함께 걸었던 건축학도는 이 한마디만 했다. "저도 이 친구 덕분에 알게 됐죠." 그러고는 묵묵히 끄덕이다가 가끔 내 눈치를 살피는 게 전부였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일부러 '아 진짜요?'와 같은 적당한 추임새를 종종 넣었다.


 제법 흥미로운 헛소리는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대화의 끝은 결국 조상님께 제사를 드려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이 근처에 제단이 있으니 바로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굳이 교대에서 보자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꼭 지금 가야 하냐고 주저하는 내게 그들이 내민 또 하나의 논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당일에 제사를 지내야 효엄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믿음은 신실하기보다 싱싱해야 했다.


그때쯤 되자 노골적인 문장도 주저 없이 뱉었다. "현금은 얼마나 있어요?" "얼마 없는데요." "괜찮아요. 일단 바로 드리는 게 중요하고요. 다음에 몇 차례 더 지내면 돼요." 그 밖에도 "주위에는 말하지 마시고요. 말하면 신성한 것에 때가 묻어 다 망쳐요."같은 경고도 했다. 금기 사항이 붙을수록 절대 보편의 진리에는 금이 갔다. 어설픈 금기를 강조할수록 더 잃을 것도 없는 신뢰를 잃게 된다는 걸 그들은 왜 모를까.


 그리고 신뢰하지 않는 그들을 따라갔다는 건 지금의 나로서도 참 모를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제단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사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함께 가겠다고 하자 아주 잠깐이지만 그들의 낯에 기쁜 성취감이 스치더니 이내 그 결정이 당연하다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리를 찾는 여정의 다음 국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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