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사이비 신도 따라가 본 이야기
‘진리’의 사전적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승인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이다.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가뜩이나 한 치 앞도 모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진리가 가진 절대 보편성이란. 그들은 그런 ‘진리’를 앞세워 내게 다가왔다.
건축학도 그는 자신이 데려온 친구를 소개하며 마침 근처라서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어제 친구를 데리고 와도 되겠냐고 물어본 건 뭔가 싶다. 당일 뻔뻔하게 데려왔다고 하기는 아직 서툰 초짜였던 것 같다. 혹은 아마 비슷한 여러 번의 경험과 헷갈렸거나. 이때는 이미 이들이 사이비 한 쌍인 걸 눈치챈 후였다. 그런데 왜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는가. 무서워서? 그냥 가겠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한 '호기심'이었다. 그들이 어떤 말로 나를 설득하려고 할지 궁금했으니까.
그렇게 카페에서 우리는 ‘진리’에 관한 탐구를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먼저 주문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세 잔과 허니브레드 하나. 계산대 앞에서 그가 쭈뼛대는 동안 내가 먼저 계산을 한 건 내 나름의 철칙 때문이다. 마음에 없는 상대에게는 얻어먹지 말 것. 사탕 한 알이라도 얻어먹으면 빚진 마음이 들고, 빚진 마음은 뜻에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 이들에게 그런 빈틈을 보였다간 정말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은 고맙다고 말하더니 허니브레드를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게 눈 감추듯 빠르게 먹어치웠다.
본격적인 진리 탐구의 시간. "진리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도 몰랐을 땐 엉망으로 살았는데 제사를 드리고 영이 맑아졌어요. 공덕을 드리면 조상님이 다 알아주시거든요." 대화는 주로 그가 데려온 낯선 친구를 통해 이어졌고 지하철까지 함께 걸었던 건축학도는 이 한마디만 했다. "저도 이 친구 덕분에 알게 됐죠." 그러고는 묵묵히 끄덕이다가 가끔 내 눈치를 살피는 게 전부였다. 나는 여전히 그들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피력하기 위해 일부러 '아 진짜요?'와 같은 적당한 추임새를 종종 넣었다.
제법 흥미로운 헛소리는 장장 3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대화의 끝은 결국 조상님께 제사를 드려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 이 근처에 제단이 있으니 바로 제사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굳이 교대에서 보자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꼭 지금 가야 하냐고 주저하는 내게 그들이 내민 또 하나의 논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당일에 제사를 지내야 효엄이 더 크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믿음은 신실하기보다 싱싱해야 했다.
그때쯤 되자 노골적인 문장도 주저 없이 뱉었다. "현금은 얼마나 있어요?" "얼마 없는데요." "괜찮아요. 일단 바로 드리는 게 중요하고요. 다음에 몇 차례 더 지내면 돼요." 그 밖에도 "주위에는 말하지 마시고요. 말하면 신성한 것에 때가 묻어 다 망쳐요."같은 경고도 했다. 금기 사항이 붙을수록 절대 보편의 진리에는 금이 갔다. 어설픈 금기를 강조할수록 더 잃을 것도 없는 신뢰를 잃게 된다는 걸 그들은 왜 모를까.
그리고 신뢰하지 않는 그들을 따라갔다는 건 지금의 나로서도 참 모를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제단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사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함께 가겠다고 하자 아주 잠깐이지만 그들의 낯에 기쁜 성취감이 스치더니 이내 그 결정이 당연하다는 듯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는 진리를 찾는 여정의 다음 국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