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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Oct 04. 2023

9월에 떠나지만 엄연히 여름휴가입니다.

[튀르키예 여행] 여름의 끝과 추석 연휴 사이 달콤한 휴가





아이 둘과 엄마. 내 옆 두 자리의 주인이었다. 채 한 살이 안되어 보이는 아기는 칭얼거렸고 네 살 남짓한 형은 잠시도 가만있질 못해 내 주변은 잠시라도 조용할 틈이 없었지만 며칠간 수면이 부족했던 탓에 나는 이륙하는 비행기의 소음을 들으며 잠에 빠졌다. 9월 마지막 주에 있을 추석 연휴 전까지의 시간을 활용한 이주가 조금 넘는 늦은 여름휴가의 시작이었다.



달라만 공항은 규모가 크지 않아 입국 수속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스탄불 공항이었다면 삼십 분은 기본이었을 텐데. 이스탄불 신공항이 생긴 뒤로는 공항에 가는 시간까지 1.5배쯤 길어져버려서 이스탄불 시내와 공항을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앞으로는 휴가 때마다 이스탄불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입국한 다음 이스탄불을 마지막 방문지로 잡고 나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미 아이벡에게 주기 위해 브라티슬라바 공항 면세점에서 사들고 온 술이 한 손에 들려있었지만 나날이 높아지는 주세로 술이 밥보다 비싸다던 말이 생각나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출국 면세점에서 보드카 한 병을 더 구입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담배 냄새가 더해진 후텁지근한 습도가 훅 끼쳐왔다. 지중해 상공에 도착했을 때부터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던 해는 어느새 거의 모습을 감추었는데도 한낮의 열기를 그대로 머금은 습도만큼은 그대로였다. 체코에서 고작 두 시간 남짓 날아왔을 뿐인데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2월에 이스탄불에 잠시 다녀온 게 마지막이었으니, 튀르키예 남부에는 2년 만에 돌아오게 된 거다.


아무렇지 않게 울리는 자동차 경적, 택시 기사들의 흥정 소리, 담배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로 공기를 가득 채운 지독하거나 더 지독한 다양한 담배 냄새들. 내가 사랑했고 또 미워했던 모든 것들 속에 돌아와 있었다.



일 년 넘게 튀르키예에 못 오게 되면서 지난 몇 년간 요긴하게 썼던 투륵셀 심카드는 만료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출구는 하나인데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가 찾는 얼굴들은 보이지 않았고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으니 마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이십 분쯤 더 지났을까. 저기 멀리서 활짝 웃는 얼굴들이 걸어왔다. 이 년의 공백을 꽉 메우듯 진하게 포옹을 했다. 마치 엊그제 봤던 것만 같다. 아이벡이 내 가방을 가져가더니 차가 있는 곳으로 앞서 걸었고, 잔수와 나는 손을 꼭 잡은 채로 뒤를 따라갔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제야 정말 집에 온 기분이다.


GIF파일. 피씨 버전에서는 이미지를 클릭해야 재생이 되는군요!


삼일 뒤 합류할 친구가 올 때까지 우리는 달라만 지역에 머물면서 작은 여행을 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머물 숙소를 미리 잔수가 예약을 해둔 상태였는데, 옛날 마구간이었던 곳을 개조한 장소로 작지만 아기자기한 가구와 장식이 있는 아늑한 장소였다. "지금은 안 보이지만 저기 마당에 수영장도 있다?" 자신이 찾은 숙소가 만족스러웠는지 잔수가 설레는 목소리로 내게 귀띔했다.



우리가 샤워를 하고 짐을 푸는 동안 잔수와 아이벡은 집주인과 한참이나 얘기를 나누더니 노트를 품에 안고 왔다.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주겠단다. 1일 1 바다 수영을 벼르고 온 가여운 내륙 국가 거주자를 위해 수영 일정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아주 촘촘한 일정이었다. 일정 설명을 끝낸 잔수가 물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은 여덟 시로 할까?"

"뭐가? 8시에 일어나자고?"

"아니지~ 여덟 시에 출발하는 거야."

"No way!"


잔수를 제외한 세 사람이 모두 다급하게 외쳤다.

두 남자가 우는 소리를 하면서 역할극 모드에 들어갔다.


"아니 엄마, 우리 지금 휴가 중이라고요. 8시에 저는 죽어도 못 일어나요. 그냥 눈 떠질 때 일어나서 움직여요. 네?"

"Yes mommy! I agree with him!"


잔수는 눈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고,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로 소파에 몸을 기대며 찻잔을 기울인다. 내일만큼은 게으른 아침이 확정이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모여 시시한 농담을 하며 키득거리고 서로의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밤. 어릴 적 여름철이면 외가댁 마당에 있는 평상에서 가족들과 과일과 미숫가루를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 여름밤들과 닮은 것만 같다. 그냥 휴가 말고, 진짜 '여름'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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