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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hie Nov 08. 2023

노쇼 손님들. 안녕하신가요?

[가이드의 일기장]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여행업계의 노쇼 손님들.


어느덧 지식 가이드로 살아온 지도 십 년이 다되어갑니다. 요즘은 국가에 따라 가이드라는 말대신 '문화 해설사'라는 명칭을 쓰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줄이야. 당시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제가 찾던 직장의 기준은 딱 두 개였어요.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지 않아도 되는 일' 그리고 '해외에 거주할 것'이었죠. 그저 두 개의 조건에 맞아떨어진 일이어서 시작했을 뿐인데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지 뭐예요. '아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걸 하겠구나.'


그렇게 두 나라를 거쳐 체코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체코에 오기 전까지 '피고용인' 신분이었던 저는 스스로를 먹여 살리는 1인 회사의 주인이 되었고요. 소개하는 나라가 바뀌고, 고용의 형태가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제가 사랑하는 이 일의 본질은 여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도시를 누비며 내가 사랑하고 인류에게 사랑받는 그 도시만의 매력을 소개하고 그렇게 여행자들과 여행지를 이어주는 일이라는 점은 어떤 도시에 있어도 변하지 않는 그리고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죠.



종종 지인들이 묻고는 합니다. 그 일도 서비스직이잖아. 피곤하진 않아? 진상은 없어?

그러면 저는 언제나 같은 답을 해요. 물론 있지! 그런데 아직 손가락 열개를 못 채웠어.


거의 십 년이 되어가니 일 년에 한 명쯤 될까요?

제가 운이 좋았던 건진 몰라도 제 마음을 힘들게 했던 손님들을 만난 경험은 정말로 여태껏 손에 꼽을 정도예요. 그게 아니라면 일에서 얻는 따뜻하고 즐거운 기억들이 더 많아서 가끔 찾아오는 부정적인 경험이 머물 자리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제게 있어 제 직업은 삶의 행복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자영업자가 되면서 제가 하는 일은 예약부터 투어 진행까지 투어에 필요한 업무 전부가 되었습니다. 예약 하나로도 저와 함께할 손님들의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어요. 누구와 함께하는 여행인지 혹은 혼자 하는 여행인지부터 손님들의 성향까지요. 예를 들어 며칠 전엔 2024년 6월의 예약이 접수되었는데 이럴 땐 전형적인 P의 성향을 가진 저로서는 일곱 달을 남겨두고 예약을 해주시는 분은 분명 J일 거야! 하고 생각해보곤 해요.


서로 다른 지역 나이 직업, 그 어느 것 하나 같은 것 없지만 제 투어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체로 여행의 스타일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비슷한 결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올린 투어 상품에 적힌 안내들. 그곳에 담긴 저의 시선과 투어의 성격에 마음이 동해 예약을 하셨을 테니까요. 그래서인지 투어를 통해 대화가 잘 통하고 마음이 꼭 맞는 분들을 유독 자주 만나게 돼요. 그러니 제게 매일의 출근길은 오늘은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하게 만드는 설레는 길이랍니다.



그래서 제게 '노쇼(No Show) 손님'은 하루 종일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어요. 만나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손님들은 보통 어떻게든 연락을 주시거든요. 비행기 연착 등으로 하루 전날에 연락을 주시는 일부터 투어 당일 트램을 놓쳤다던지, 길을 잘못 들었다 던 지 하는 사정을 알리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는 하죠. 그러니 예약한 날짜에 만나는 시간 혹은 그 이후까지 연락이 없는 건 정말 드문 일이에요. 걱정되는 마음에 확인차 보낸 메시지에도 답이 없으면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습니다.


처음 드는 생각은 핸드폰을 분실 혹은 도난당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에요. 소매치기가 흔한 유럽에서 스마트폰은 범인들에게 가장 좋은 표적이 되죠. 스마트폰 하나로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서 손님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제가 보내는 메시지를 받지 못하고 또 보내지 못하는 상황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커요.


그리고 나면 혹시라도 여행 자체를 떠나오지 못하신 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삶의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으신 건 아닐까, 예약금 같은 건 생각도 못할 정도로 경황이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얼굴조차 마주한 적 없는 이름만 아는 누군가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그저 일정이 바뀐 것뿐이기를, 굳이 환불을 하자고 취소를 하는 게 번거로워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은 것이기를 바라게 되죠.


 오늘도 예약 명단에 새로 들어온 예약자의 정보를 옮겨 적습니다. 그리고 여행 준비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적은 메시지를 손님에게 전송해요.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적어뒀어요.

'프라하에서 뵙겠습니다. :)'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침 출근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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