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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Apr 27. 2024

어른이 되어 그리는 그림

왜 진작 안 했을까?

행정복지센터 그림 교실의 수강생분은 나이들이 지긋하신 분들이 많다. 거의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들이 많으시다.

사는 게 바빠서 하고 싶어도 못했던 그림 공부를 세월의 짐을 덜어놓은 시점에 와서 시작하신다.

이제야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이제 생계나 가족과 자식에 대한 의무를 다했기에 시간도 있고 마음의 여유도 있는 것이다. 소소한 행복을 찾는 시점에 만난 그림공부.

집 가까운 곳에서 부담 없는 수강료로 하다 보니 충분히 해볼 만하다. 사실 재료비도 거의 안 든다.

대단한 작가를 목표로 하시는 건 아니고 취미로 소일거리로 하신다.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 정말 해보고 싶었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정말 부러웠다, 화가가 꿈이었는데 형편상 못했다 하신다.

당연히 그림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오실 수밖에 없다. 관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한 번도 안 그려 봤다 하시면서 부끄러워하신다.

하지만 기우~ 다들 너무 잘하신다.

물론 몇십 년씩 그림만 그린 작가님들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선과 감성으로 그림을 만들어 내신다.


수업에서 가장 목표로 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그림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서툴러도 좋은 느낌, 눈길이 가는 그림, 감정을 울리는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싶다.

그래서 일상에서 주제를 찾아보게 한다.

내가 사는 곳의 내가 만나는 풍경, 내가 쓰는 물건, 가족과 친구는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귀하디 귀한 나만의 소재이다.

그래서 잘 그린 그림의 모방이 아닌 내 삶과 내 생각이 담긴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싶다.

내 의도를 잘 따라와 주신 우리 제자님들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며 자신을 다시 들여다본다.

내가 이렇게 그릴 줄 몰랐다, 너무 재밌다, 자다가 일어나서 그렸다, 진작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신다.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 같아요, 세상이 새롭게 보여요 하실 때 정말 마음 뿌듯하다.

이 좋은 걸 왜 진작 안 했을까 하신다.


사실 나이들이 있으시니 눈도 침침하고 오래 집중하면 목도 뻐근하고 육체적으로 힘들어하실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젊어서 해야 하는데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 주신다고 할 때도 있다.

매번 주제를 드리면 이걸 어찌 하노 어렵다 하시면서 절레절레하시지만  막상 하면 뭐가 되니 신기하다 하신다. 선생님 너무 어려워서 못할 줄 알았는데 그리니까 되네요. 하며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 하신다

얼마나 진지하신지 숙제를 내드리면 '아이고야'하시면서도 다음시간에 '숙제했어요.' 하고 보여 주신다. 한 번씩 숙제를 안 내 드리면 선생님 숙제 없어요 하고 먼저 물어보신다. 참 귀여우시다.

일 년 넘게 수업을 하다 보니 정말 진지하게 푹 빠져서 하시는 분들은 그림이 정말 발전하신다.

개인전 하셔도 되겠다 하는 분들도 계신다.

"선생님은 왜 칭찬만 하세요? 진짜 잘하는 줄 알고 착각한다"고 하시는데 내 눈엔 온통 칭찬거리만 보인다. 도전하고 열심히 하시는데 어찌 칭찬을 안하리.


늦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너무 즐겁다 해주시니 내가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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