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와 목표
단순하고도 다나다난한 해였다. 나의 행동반경은 태평양 너머까지 넓어졌다가 3개월 만에 다시 안양의 네모난 방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 때문이었다. 이후 약 일곱 달 간 안양을 벗어난 횟수는 손에 꼽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생활을 제법 즐길 줄 안다는 사실이다. 레진공예에 도전해봤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새로운 온라인 게임을 시작했다. ‘제발 밖에 좀 나가라’는 잔소리를 매일 듣던 내가 2020년에는 모범시민이 되다니, 2019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런 한 해를 돌이키고 보니 2021년에는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작년 연초까지만 해도 앞으로의 한 해에 대한 밑그림이 어느정도 그려졌었는데. 그래서 최대한 원초적이고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 목표를 세워보자고 생각했다. 예컨대 매년 신년목표에 꼭 적어넣었던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헬스장 가서 운동하기’ 대신 ‘뻔뻔해지기’ 같은 것들을 적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가지 떠올렸더니 작년 한 해 동안 내가 무엇으로 인해 힘들어했었고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했었는지 새삼스레 되돌아보게도 되었다.
첫 번째.
나에겐 미약한 자기혐오가 있다. 누군가 나에게 주는 애정을 넉넉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꼭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할 것 같은, 그러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불안감을 언제나 느낀다. 내가 이런 걸 받을 자격이 되는 걸까?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마음 편하고 애정은 마음의 빚으로 쌓아두곤 한다.
2020의 마지막 0이 1로 바뀜과 동시에, 절친한 친구의 좋은 일이 발표되었다. 친구가 수상소감에 내 이름을 적어 주었다. 뛸 듯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이런 감사를 누려도 되는 사람인지 불안했다. 하지만 올해는 이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적어도 한 명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만큼 앞으로도 좋은 사람이면 된다. 여유가 있다면 올해에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자. 그리고 나를 깎아내리지 말자. 또 그런 만큼 당당해지자. 난 자격이 있어, 늘 되뇌자.
두 번째.
나는 남의 시선에 무척 예민한 편인데다 쉽게 기죽는 편이다.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 백인들만 가득한 교실에서 나 혼자 동양인일 때, 내가 가진 것들에 자신이 없을 때. 언제나 주변의 눈치를 봤고 아무도 건네지 않은 자괴감을 품곤 했다. 이젠 뻔뻔하고 당당해지자. 어설픈 완벽주의를 버리자. 80을 잘하고 20을 못해도 20에만 골몰하는 나를 다독여 주자.
세 번째.
주변을 돌아볼 에너지를 늘 남겨두자. 자정이 되자마자 한 명 한 명에게 새해인사를 보내주던 사람들의 성실함과 다정함, 그런 것들을 닮아가자.
생각날 때마다 목록이 추가될 테지만 일단은 이 정도다. 위의 세 가지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다르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감하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저 가치관의 차이일 테니 누구도 틀리지 않다. 나에겐 중요한 것이기에 나누어 적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일수록 잘게 나누어 곱씹어야 하니까.
불과 이틀 전까지 2020년을 환불해 달라고 불만을 토해냈었는데 막상 2021년이 되고 나니 내가 묵묵히 열심히 살아낸 2020년을 환불받기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얌전히 2021이라는 숫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2021년은 매 순간 불특정 다수의 무사안위를 바라지 않아도 되는 해가 되기를. 그리고 나는 그런 한 해를 작년보다 더욱 잘 살아낼 수 있기를. 나의 신년목표를 이루고 성장할 수 있기를.
*
용두사미로 끝난 것 같은 글이라 발행할까, 말까를 하루 가까이 고민했다. 하지만 모든 글에 철학이나 의미를 담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쩌면 이것도 2021년에 추구하는 ‘나’의 시작일지 모른다. 그런 마음이 들어 기어코 발행 버튼을 눌렀다. 때로는 복잡한 생각을 지우고 느긋함과 여유를 가져야 하듯이, 사소한 글이 필요한 순간도 분명 있지 않을까.